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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치권력자들 선민의식과 집단적 나르시시즘의 덫에 걸린 것 같다.

오수균 | 입력 : 2023/04/18 [11:22]

▲ 오수균=협성대학교 객원교수     ©

 

[협성대학교 객원교수=오수균] 지금 우리나라는 1945. 8. 15. 해방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난세 중의 난세인 것 같다. 과거의 역사에서 보듯 난세에는 붕당을 지어 사리사욕을 꾀하는 자들이 많아진다. 심지어 보위도 노렸다. 국가의 번영과 안정 그리고 국민의 삶을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하며 국민의 신망을 받는 진정한 정치인을 찾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당리당략이나 선민의식 그리고 진영논리의 당위성을 내 세우며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치고 나를 따르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고 최대의 만족을 주는 공리주의 사상이 활개 치는 듯한 세상으로 점점 몰입되어가는 듯하다. 내 편이 아닌 상대는 상종하지 못할 적으로 몰아가고, 어느덧 많은 사람도 진영논리를 달리하는 상대와는 만남도 대화도 단절되는 갈등의 골만이 점점 깊어지는 집단적 사고의 광기에 사로잡혀 사회적 병폐만 쌓여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 분할 구도의 정치적 공학(political engineering)을 통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이나 집단이 똘똘 뭉치는 정치구현에 몰입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한층 더 높은 정치공학 구도를 견고히 하려는 선전 선동의 여론전과 심리전을 통해 국민의 눈을 혼탁하게 만들고 귀를 혼란 시키는 진영논리의 잣대로 분할 책동에 혈안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진영논리에 의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은 집단적 사고를 동일시하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옳고 그름이 아닌 무조건 광기의 준거집단을 만들고 상대를 증오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으며 똘똘 뭉친다.

 

탈무드에 나오는 배에 관한 이야기이다. 뱀의 꼬리는 항상 머리가 가는 대로 따라 다녀야만 했다. 어느 날 꼬리가 머리에게 말했다. "꼬리인 나는 항상 네 머리의 꽁무니만 질질 끌리어 따라 다녀야만 하는 거지? 도대체, 너는 나를 노예처럼 이리저리 항상 무작정 끌고 다니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런 네 행동은 나쁜 행동이고 불공정한 것"이라고 화를 내며 자기를 깔보고 무시한다고 큰 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머리가 말했다. "야! 이 바보 천치 같은 소리하지마, 너는 위험의 소리도 미리 듣고 알아차릴 귀도 없고, 눈도 없어 아무것도 볼 수도 없고, 너는 행동을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할 머리도 없어, 내가 너를 끌고 다니는 것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고, 너를 생각하고 너를 위하여 한 일이야 오해하지 마". 이 말을 들은 꼬리는 큰 소리로 비웃으며 "그동안 그 말은 귀가 따갑고 아프도록 귀찮게 수도 없이 들어왔어, 머리야 너는 이제는 아예 나를 또 설득하려 하지 마" 독재자나 폭군의 권력자 모두는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무조건 따르게 하려고 권력을 휘두르고 무서운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자, 머리는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을 꼬리 네가 대신 한번 해보렴". 이 말을 들은 꼬리는 너무 기뻐하며, 앞으로 나가 이리저리 머리를 끌고 다녔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험한 깊은 개울 물속으로 풍덩 떨어져 머리가 온갖 힘을 다하여 간신히 나왔다. 또 꼬리는 가시가 무성한 덩굴 속으로 깊숙이 기어들어갔다. 머리는 또 안간힘을 다하여 빠져나왔는데, 가시넝쿨에 온몸이 찔려 상처투성이였다. 또 꼬리는 무작정 정신없이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산불이 나 활활 타고 있는 불길의 숲속으로 머리를 끌고 기어들어 갔다. 꼬리는 불이 붙어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꼬리는 불길을 헤매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머리는 불길을 뚫고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불붙은 꼬리가 너무 불 속 깊이 들어가, 결국 뱀은 분별없는 맹목적인 꼬리 때문에 타 죽었다.

 

정치인 등의 지도자를 선택할 때 머리와 같은 현명한 자를 선택해야지, 꼬리와 같이 분별력 없는 우둔하고 권위를 내세우며 권력만을 행사하려는 자를 선택하게 되면 결국 국민 모두는 비참한 파멸을 가져온다. 뱀 꼬리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이념과 편견 등 진영논리의 헛된 망상을 보는 듯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참으로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일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황당한 일들을 정당화시키려는 확증편향의 팬덤 정치의 몰이배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치고 거짓도 자꾸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라는 격언처럼, 사실이 아닌 선전 선동의 거짓도 내 편은 옳다는 집단적 사고를 무조건 믿고 맹종하고 굴복시키려는 광기의 사회 풍조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당연한 논리로 서서히 자리매김해 가는 도덕적 상대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정치인 등의 권력자들은 그것이 사회·도덕적으로 절대적인 선인 것처럼 포장하여 따르지 않는 국민을 적대시하고 호도하고 현혹하며 우리 사회의 병폐를 점점 더 증폭·확산해가는 주역인 듯하다.

 

특히, 정치권력자 자신들은 서로 국민의 편에 서서 오로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국민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며, 열심히 청렴하게 또 올바르게 일하는 일군이고 봉사자라며, 이전투구로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철옹성을 쌓고 있다. 또 사회적인 이슈의 공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이분법적 논리의 도랑을 만들고, 그 도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빠지지 말고 빨리빨리 건너오라 손짓한다. 우리 편의 도랑 쪽 언덕은 상대편 쪽보다 더 안전하고 튼튼하고 희망이 있고 우리가 더 잘하고 있다고 목소리 높인다. 또 도랑 건너 쪽 언덕은 부실공사로 인하여 금방 무너져 커다란 피해를 볼 것이라 현혹한다. 그러면서 양쪽은 아귀다툼 속에 뒤엉켜 선동가들은 서로 도랑을 점점 더 깊이 파라고 아우성친다. 어느덧 그 도랑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게 폭이 넓어지고 수심이 깊은 다리 없는 루비콘강이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불현듯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대해 나와 견해가 다르고 나와 생각을 달리하면 서로가 상대에 대해 실망했다며 대화는커녕 서로는 상대할 가치조차도 없다고 등을 돌린다. 우리 사회는 소통과 공론의 장은 이미 사라지고 오로지 서로가 극단적인 자기주장만을 반복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서로 간에 사회의 병폐이고 적폐로 단정하고 척결 대상의 테두리에 가둔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또 어떤 세력이나 집단 간에 일정 사안에 관한 생각과 이념이 단지 다를 뿐, 결국 우리의 삶이 좋아지길 기대하고 미래 지향적인 사회 발전을 희망하는 공감대는 같을 것이고, 더 나아가 진영논리를 떠나 우리 사회는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인 정치·경제·역사·법률문제 등의 해결에 대해 각각의 논리에 따라야 하지만, 모든 사회적 문제의 해결방안을 정치 논리나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며 해결하려는 논리의 혼돈이 정치인들의 선민의식 속에 상대적으로 깊이 잠재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진영논리를 달리하는 세력이나 집단들은 도로 건너편에 서서 서로 맞바라보며 내 편이 옳다고 소리치고 손가락질하는 등 세상의 운명이라도 걸린 듯 아귀다툼의 현상이 점점 더 널리 퍼지는 듯하다. 누군가 SNS 등에 자기편이 옳고 상대편이 나쁘고 그르다는 표현이 비치면 그 순간부터 상대로부터 몰매를 맞는다. 또 어떤 상대는 내 편과 뜻을 달리하는 상대에 대한 공격의 선두에 서서 여론을 조작·조성하여 심리전을 펴며 돌격대처럼 공격하며 영웅처럼 나선다.

 

그리고 또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비일비재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만나는 상대가 어떤 편향의 사람인지 모르기에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말자, 잘못 얘기하면 갈등이 생기고 반감의 골이 빚어지고 더 진전되면 주먹다짐이라도 할 듯 상대는 상종할 수 없는 존재라고 낙인을 찍고, 그 다음부터는 연락도 없고 가깝게 지내던 우정도 어느새 견원지원(犬猿之間)과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가 된 것처럼 넘나들 수 없는 담장을 쌓는다.

 

그러나 도덕적·윤리적 기반을 상실한 정치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국민의 공익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 경계하고 그러한 정치가 우리 사회에 발붙일 틈이 없어야 한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도덕적·윤리성은 일반 국민보다 더 높아야 한다. 이러한 도덕·윤리의 문화적인 보편적 가치가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 또 사회의 모순과 악습의 판단 기준은 도덕적·윤리적 상대주의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절대주의이어야 한다. 범죄의 법 집행은 국민 정서의 법 감정이 아니라 법의 정의, 합목적성 및 법의 안정성이 담보되는 법적 판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떠한 사람들에 의해 혹은 어떠한 집단이나 세력에서 이루어지던 보편적인 가치판단 기준에 의한 동일의 잣대가 제시돼야 한다. 또 우리 국민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서 일어나는 갈등·불신·모순·병폐 등의 사회현상을 진영논리의 상대적 가치판단 기준이 아닌 보편적·절대주의적 가치판단 기준에 의하여 해결방안을 찾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의 편견에서 벗어나 정의롭고 깨끗하고 미래 지향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 등 일부 권력자들의 국민을 향한 거짓 선동은 그 수위를 더 높이며 점점 더 많은 거짓을 낳고, 그들이 그릇된 것을 옳다고 믿고 주장하는 확증편향은 현재의 사회현상을 왜곡하고 미래를 올바로 준비하지 못하며 국민을 현혹하며 국민을 불행의 길로 인도하고 있을 뿐이라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진영논리의 포로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국민이 돼야 한다. 이것은 진영논리의 이익이 아니라 진영을 넘어서는 이성으로서 내가 나를 판단하고 내가 그 세력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고 그름의 보편적 가치를 부여하는 판단 기준을 주장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약육강식이나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치열한 적자생존 논리 속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그런 사악하고 이분법적인 프레임의 사회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권선징악과 이웃 간에 상부상조하는 미덕을 품고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국경 없는 무국적의 무한경쟁 시대 속의 지구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국민 그 어떤 누구도 이런 세상 속에서 사고하고, 이런 세상 속에서 경쟁하고, 이런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있다. 과거에는 울타리의 담장을 넘어 한 동네 속에 살고 있으면 이웃이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의 이웃은 우리 국가와 국민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협력하면 그 국가의 국민이 바로 이웃이 되는 세계화의 세상이다. 국가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국민의 행복한 삶은 정치인 등 어떤 세력이나 집단이든 진영논리를 떠나 상호 협력하고 협조하고, 설령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과 논리가 상호 간에 상반되고 대립이 설령 될지언정 그 뜻을 서로 존중하며 수렴하는 사회적 풍토 조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하지만 정치권력자 등 일부 선전 선동가들은 내가 가장 잘하고 스스로 도덕적으로 옳고 우월하다는 선민의식과 집단적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덫에 걸려있는 듯하다.

 

한 사회에는 정치적 이념과 신념, 종교, 태도, 가치관이나 습관 등이 서로 다르고, 또 같은 세대의 문화 속에서도 연령에 따라 소득, 음식, 노래, 취미나 거주지 등이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계층이나 열망의 준거집단에 따라 진영이 갈리기도 하고, 또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견해와 생각을 달리한다. 따라서 사회의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또 갈등이 사회체계를 변화·유지하고 발전하는 데 당연한 현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정치인 등 권력자들은 진영논리가 아닌 우리 사회 내에 발생하는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여 사회가 원만하게 유지· 발전될 수 있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집단적 사고나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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