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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돌베개의 시》 잠 못 이루는 참회의 밤

이상호 | 입력 : 2024/03/20 [09:16]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전천안아산경실련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소장] 이순신(1545.4.28~1598.12.16) 장군은 저녁이면 지필묵을 펼쳐놓고 하루를 돌아보며 임진왜란이라는 전란과 군대와 백성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시킬 것인가를 돌아보고 곱씹었다. 그것은 『난중일기』로 남아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그 난중일기를 보면 임진왜란이란 전쟁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술 마신 이야기, 여자와 잔 이야기 등 그날그날의 자기의 생활도 적어 놓았다. 이순신 장군은 늘 자신에게 솔직하였으며 그 솔직함이 있었기에 항상 겸허한 자세로 매사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장군은 그 어떤 전투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오만하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참회하는 밤을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한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1778년)는 『참회록』에서 자신의 성장 과정과 자신이 저지른 비행과 난잡한 성생활 등 치부까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책은 세계 3대 고백록으로 꼽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그토록 낱낱이 고발할 수 있을까? 그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루소는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불후의 명작을 남김은 물론 잊혀 지지 않는 철학자가 된 것 아닐까?

 

인류의 선각자들은 저녁을 단지 휴식과 잠자는 시간으로 여기지 않고 참회하는 시간으로 여겼다. 그것은 철학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인 듯하지만 일반인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아침은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로 출발하는 시간이지만 저녁은 하루를 끝마치는 참회의 기도로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며 죽는 날까지 자신의 오점을 딛고 바르게 서려고 노력해 온 사람들의 삶에는 항상 저녁이 아침 이상으로 소중했다. 그런 점에서 참회의 시를 읽는 것은 아침이 아닌 저녁이 제격이다. 이형기(1933∼2005)의 시 《돌베개의 시》도 그런 점에서 저녁에 읽어야 하는 시이다.


밤엔 나무도 잠이 든다.

잠든 나무의 고른 숨결소리

자거라 자거라 하고 자장가를 부른다.

 

가슴에 흐르는 한 줄기 실개천

그 낭랑한 물소리 따라 띄워보낸 종이배

누구의 손길인가, 내 이마를 짚어주는.

 

누구의 말씀인가

자거라 자거라 나를 잠재우는.

 

뉘우침이여.

돌베개를 베고 누운 뉘우침이여.

 

-이형기(1933∼2005) 《돌베개의 시》 전문-

 

사람은 아침에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하루 종일 온갖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아침의 다짐은 물론 순간순간 자신을 잊기도 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늘 실수투성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참회하는 일이며 하루 중 모든 일을 끝내는 시간에 참회의 시간을 갖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참회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항상 자신을 바른 위치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저녁은 모든 활동이 멈추는 시간이다. 그리고 저녁은 삼라만상 모든 동식물에게 위로와 휴식의 시간이 된다. 동식물들도 활동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은 저녁에도 활동한다. 특히 문명화가 가속될수록 인간은 저녁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문명의 발달만큼 인류는 참회의 저녁을 갖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참회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만이 하여야 하는 일이다. 사람에게는 의지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의지와 욕망은 사람과의 관계, 삼라만상의 만물과의 관계에서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를 본래의 인간다운 모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는 일이 많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돌아보며 늘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밤은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밤이다. 그래서 나무도 잠들고 “잠든 나무의 고른 숨결 소리”가 자장가로 들려도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다.

 

잠 못 이루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누군가가 “한 줄기 실개천” "아 가슴에 흐르게 하고" “그 낭랑한 물소리 따라 띄워보낸 종이배”를 띄워 보내고 따뜻한 손길로 “내 이마를 짚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누군가는 “자거라 자거라”하고 “나를 잠재우”고 있다. 하지만 그 말씀과 손길을 느끼는 순간에 나는 잠 못 이루고 돌베개를 고쳐 베고 높여 벤다. 순간순간마다 커다란 뉘우침이 있기 때문이다. 밤은 그런 뉘우침의 밤이다. 뉘우침의 밤이기에 시의 화자는 잠든 나무의 숨소리도 듣고, 나무의 자장가 소리도 듣고, 그 누군가의 손길도 느낀다. 그 밤은 잠들지 못해 괴로운 밤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독한 자신을 아름다운 세계로 이끄는 소중하고 숭고한 밤일 수 있다.

 

시의 이미지는 나무라는 수평적 이미지에서 드러누워 있는 돌베개라는 수평적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잠 못 이루는 고뇌의 밤을 연출한다. 또 소리의 이미지는 손길로 손길은 다시 말씀으로 전환되면서 뉘우침이란 주제를 선명하게 이끌어 간다.

 

그러나 세상엔 뉘우침의 밤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문명 시대의 사람들, 정치인들이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정치인의 역사를 보면 정적 등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찬양하게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은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시끄럽고 잔인해지고 또한 사기꾼들처럼 입으로만 모든 일을 행하여지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입과 행동은 뉘우침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그들이 살아가는 자취의 상당수는 오점이 많다. 그리고 그들의 뉘우침과 사과에는 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뉘우침의 밤, 그 고독한 시간을 사랑할 줄 알았다면 그들은 정치인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진실하지 못한 정치가 얼마나 야만적이며 사람들을 기만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린 일상에서 무엇을 참회하여야 하는가? 인간의 말과 행동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 있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다. 특히 말은 더욱 그렇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초자아’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이 98%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였듯이 인간의 말에 드러난 마음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가 “언어는 사고의 집이다”고 했듯이 말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인격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린 살아가면서 참회의 가장 첫 번째는 말을 참회하는 일이다. 그리고 행동을 참회하여야 한다. 인간 삶의 대부분은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참회함으로 자신을 올곧은 위치로 돌려놓으며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그 참회는 평생 해야 하는 일이며 평생의 공부로 여길 때 인간은 숙는 순간까지 성숙하게 된다.

 

루소가 『참회록』에서 말했다. “과실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과실을 회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렇다 과실을 회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인간은 좀 더 아름다워지고 좀 더 완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회는 사람을 움직이고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Graf Tolstoy 1828~1910) 는 그 힘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젊은 어느 때 나는 농사꾼의 초가집 작은 창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한 윤락녀가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뼈저린 회한의 눈물과 신성한 기도는 문학보다도 훨씬 강하게 나를 움직였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다. 그 잠 못 이루는 밤은 고통이지만 때로는 고독한 아름다움일 수 있다. 그 고독한 아름다움의 시간은 인간을 더욱 인간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시간인지 모른다. 인간이 그것을 사랑할 때 아침 이상으로 밤은 의미가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밤은 인간을 고독하게 하지 않는다. 문명의 밤은 사람을 이끄는 유혹의 손길이 밤에도 계속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각박해지는 것은 고독한 성찰과 참회의 밤을 문명이 앗아갔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고독한 성찰과 참회의 밤을 갖는 것은 순전히 개개인의 역량이며 영역이다. 아침에 기도로 시작했다면 저녁에 다시 참회의 기도로 마감함은 어떨까? 나는 늘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참회의 저녁을 잊은 적도 많다. 우리 모두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힘차게 시작하는 아침만큼이나 고독한 참회의 밤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이형기의 돌베개는 우리 모두의 저녁에 필요한 돌베개가 아닐까? 그 돌베개를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베고 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형기(1933~2005)****

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시인. 1950년 <<문예>>지를 통해 16세에 등단하여 한국 문단에서 천재문사로 불려왔다. 195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국제신문 편집장과 동국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학국문학가협회상, 한국시인협회상, 운동주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수상하였으며 그가 죽은 다음해인 2006년 경남 진주시에서 '이형기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1960년대 한국 문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순수, 참여논쟁에서

예술가의 개성적 자유를 옹호하고 순수문학의 치열한 시 정신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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