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어서오세요” “여기 김치찌개 1인분만 주세요” “우리 식당은 1인분은 팔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벌써 근 20년 전의 일이다. 점심때가 되어 홀로 식사해야 할 일이 있어 인근 한식집에 들어갔다. 메뉴를 보니 김치찌개가 있어 시켰는데 1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김치찌개 1인 10,000원(2인분)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1인분에 10,000원인데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망설이다가 그냥 나왔다. 다른 식당으로 가서 국밥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런데 지금은 1인분을 팔지 않는 식당이 점점 더 늘고 있다. 1인이 식사를 해결하려면 해장국집 등 국밥집이나 햄버거 등 프랜차이즈 업체를 찾아야 한다. 최근에 시를 읽다가 이덕규의 《혼밥》을 읽으며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왈칵 목구멍으로 솟아올랐다.
이 시는 이덕규의 시집 『오직 사람 아닌 것』(2023. 3. 17. 문학동네)에 실려 있는 시이다. 기억을 더듬는다. 김밥집에 가면 벽을 보고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본다. 나도 벽을 보고 홀로 김밥과 우동을 주문해 먹었다. 모두 낯선 사람들이라 서로 얼굴을 보고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아예 벽을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면 서로 간에 부담이 없다. 그래도 나는 혼밥이 익숙하지 않아 가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걱정한다. 때로는 누군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혼밥집에서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같은 나이 든 기성세대들에게 혼밥은 익숙하지 않은 밥이지만 신세대들 특히 MZ 세대들에겐 익숙한 밥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혼밥은 낯선 단어가 아니라 매우 익숙하면서도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다. 그 혼밥은 자기 집에서, 자기의 승용차 안에서, 식당 한 코너에서, 기차역 대합실 의자에서, 기차역 분식코너에서 등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1인 세대가 늘어나면서 혼밥은 시대적 대세이며 트랜드가 되었는지 모른다.
혼밥하는 사람들을 관찰해 본다. 그들은 대체로 말이 없다. 주변도 돌아보지 않는다. 빨리 먹는다. 바쁘니까 빨리 먹을 것이다. 말 상대가 없고 할 일이 없으니 빨리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혼밥을 하면서도 여유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대화의 상대는 핸드폰이나 패드, 컴퓨터 등이다.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나 핸드폰을 보고 검색하는 사람들은 더 천천히 먹는다. 모두가 혼밥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식사하는 것일까? 한 끼를 때우는 것일까? 분명 ‘식사’와 ‘끼니’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밥’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물질을 제공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타자와의 연결을 위한 중요한 매체이다. 따라서 ‘식사’와 ‘끼니’ 먹는다는 것은 같을 테지만 그 먹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식사’라 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며 서로 간에 정을 교감하며 먹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끼니’는 아침, 점심, 저녁 한 ‘끼’를 때우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친구와 밥 먹자고 할 때 “식사하자”고 말하지 “끼니하자”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혼밥은 ‘식사’를 하는 것일까? ‘끼니’를 때우는 것일까? 물론 혼밥의 시대에 많은 혼밥인들이 혼밥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식사’가 공동체적이라면 ‘끼니’는 개별적일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혼밥이 늘어난다는 것은 공동체가 점점 와해되어 가고 개별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세상은 이미 혼밥이 익숙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시 속의 화자는 분명 혼밥이 어색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혼자 먹는 밥이/서럽고 외로운 사람들이/막막한 벽과/겸상하러 찾아드는 곳”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서럽고 외로워 막막한 벽과 겸상하고 있다. 그 시간은 고독의 밥알을 씹고 넘기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고 메모 한 장 남긴다. 나는 타인이 아닌 나와 함께 나란히 앉자 밥을 먹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자아(自我)인 동시에 타자(他者)가 된다.
혼밥하는 영혼은 고독하다. 고독한 영혼은 사랑에 허기져 있다.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돌아보니 “쓸쓸하고 허기진 내 영혼”만 내 곁에 있다. 그래서 스스로 위안할 뿐이다. 나는 홀로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쓸쓸하고 허기진 내 영혼”과 밥을 먹었노라고.
사실 옛날에는 혼밥의 인구는 적었지만 혼밥하기 좋은 곳이 많았다. 목로주점도 많았고 목로 밥집도 많았다. 할머니의 걸걸한 손맛이 가득 담긴 혼술하기 좋은 목로주점도 많았다. 인심 가득한 오래된 식당, 벽은 얼룩지고 뚝배기는 이가 빠졌지만, 그 안에 담겨 나오는 음식에는 인심이 넘치기도 했다. 혹여 음식 재료가 생겨나 가져가도 뚝딱 만들어 내놓으며 탁배기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여유로운 식당 겸 주점도 많았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업체가 대세를 이루고 수익성이 우선되면서 그런 식당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점점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문인(文人)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끔 명동의 술집 ‘은성’을 접한다. ‘은성’은 명동에 있던 오래된 술집이었다. 유명한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여기 그 시대를 주름잡던 박인환, 김수영, 전혜린, 천상병 등 당대 문사들의 단골손님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요즈음도 그런 문학과 사랑과 인생과 고독과 인심이 가득한 술집, 혼밥집이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데 점점 그런 집은 찾기 어렵다.
벌써 오래전부터 혼밥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혼밥이 점점 힘든 세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혼밥은 점점 식당다운 식당이 아닌 코너로 몰려가고 있다. 오래전 내가 홀로 식당의 한 구석진 곳에서 밥을 먹을 때 혼밥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주변을 가끔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객지에서 홀로 지내는 아들이 떠올랐다. 국밥 한 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그 아들이 목구멍에 걸리고 있었다. 아들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홀로 객지에서 지내며 거의 혼밥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들 역시 시대적인 트랜드에 맞게 혼밥에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더 두렵다. 혼밥에 익숙해져 있는 한 홀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을 만나기만 하면 결혼을 재촉한다.
통계에 의하면 혼밥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난다. 또 영업성을 따져 1인분은 취급하지 않는 식당들도 늘어난다. 그러면서 혼밥을 위한 음식점도 늘어나고, 편의점 도시락, 라면 끓이는 기계, 혼밥을 위한 배달 음식 등 다양하게 늘어난다. 그런 혼밥은 유쾌한 식사는 아닐텐데. 요즈음 세태에 어쩔 수 없는 그 혼밥을 어찌하랴.
나이가 들면서 혼밥이 점점 두려워진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떠나가고 결국엔 부부만 남을 것이고, 세월이 흐르면 어차피 혼밥의 시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부부가 동시에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 한, 누군가는 남아 혼밥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점차 혼밥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시 《혼밥》 속의 화자처럼, 쓸쓸하고 허기진 영혼과 혼밥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을 기르는 삶 또한 나이 듦의 지혜가 아닐까? 언젠가 내가 겪을 혼밥의 그 밥그릇 곁에 쓸쓸하고 허기진 영혼을 달래줄 신이 함께 했으면 참 좋겠다. 세상에 점점 늘어나는 혼밥인들의 곁에 그 쓸쓸한 영혼을 어루만져 줄 신이 함께하기를 기도해 본다. 생각해 보니 혼자가 늘 혼자는 아니었다. 늘 내 곁에는 내 영혼이 함께 하고 있었다. 누가 ‘혼밥’을 외로운 밥이라고 했는가?
****시인 이덕규(1961~ )에 대하여***** 경기도 화성에서 1961년에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작(詩作) 활동을 해 왔다. 경기 민예총 이사장을 했다. 현대시학 작품상, 시작 문학상, 오장환 문학상, 16회 김종철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녹이었습니다』, 『오직 사람이 아닌 것』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뉴스파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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