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인다》 배타성의 프레임에 갇힌 자에 대한 충고

이상호 | 입력 : 2019/08/28 [18:55]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작년 여름엔 독한 더위와 심한 가뭄으로 물 부족을 우려하게 하더니 올해는 비는 자주 내렸지만, 무더위는 여전했습니다. 곧 가을이 오지만 농민들에겐 또 시름이 가득합니다. 양파와 마늘 풍년은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고 해결해야 할 정부는 묘안을 찾지 못하고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풍년을 기대하면서도 쌀 수매 가격에 촉각을 세웁니다.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을 처지라고 아우성을 치며, 기업인들은 불황에다 미․중 무역 전쟁과 대일 무역 보복 등으로 출구를 못 찾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관리하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정부는 잘되어 가고 있다면서 당당하기만 합니다. 정당과 정치인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각자의 정치적 계산법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국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라는 청원과 임명 불가의 청원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 청와대 홈페이지에 찬성 반대 여부의 문제인가요? 모두가 각자의 산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성(城)만 쌓고 보편적 진리보다는 상대를 공격하여 장악할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의 정치인과 사회 현실을 보면서 박노해(1957~, 본명 박기평, 전남 함평 출생, 선린상고 졸업)의 시(詩)가 생각나서 다시 읽습니다.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인다

                -박노해-

    

달나라에 갔다 온 암스트롱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달에 가서 무엇을 보고 왔는가?

    

"지구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고 왔다"

    

우리가 매일 그 안에 살고 있는 지구

그래서 그 온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었던 지구

지구가 아름답고 소중한 푸른 별이라는 걸

달나라까지 가서야 확연하게 알 수 있었던 걸까요

    

경주 남산자락 첩첩 벽 속에서 세월이 깊어 갈수록

세상이 눈물나게 아름다워 보입니다

구르는 통 속에서 나와야 통을 굴릴 수 있다더니

이렇게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 내가 살던 산을 바라보니

이제야 산이 보입니다 숲이, 나무가 바로 보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크고 장엄한지

우리가 얼마나 좁고 작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닫힌 강함이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 건지

그리고,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가 왜 미래의 희망인지

우리가 무엇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환해집니다.

눈물 나게 눈물 나게 환해집니다.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입니다.

다시 첫 마음으로, 산으로 걸어갑니다.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느린걸음.2018>에서-

    

사람은 타인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자신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 못합니다. 눈이 앞으로만 있기 때문일까요? 자기편견이란 울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탓일까요? 달나라 갔다 온 암스트롱이 달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는 지구가 참으로 아름다운 별이라는 걸 깨닫고 왔습니다. 지구 안에서 지구를 볼 때는 서로 지지고 볶고 춥고 덥고 해일과 지진이 못살게 구는 곳이지만,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습니다. 굳이 왜 달나라까지 가서야 지구가 아름다운 것을 깨닫고 왔을까요? 시인은 시를 왜 그렇게 시작했을까요? 사람들은 늘 자기 안에서 자기는 보지 않고 타인만 보려 한다는 일침이 아닐까요?

    

“경주 남산자락 첩첩 벽 속에서/세월이 깊어 갈수록 세상이 눈물나게 아름다워 보입니다/ 구르는 통 속에서 나와야 통을 굴릴 수 있다더니/이렇게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 내가 살던 산을 바라보니/ 이제야 산이 보입니다 숲이, 나무가 바로 보입니다” 경주교도소(경주시 내남면 포석로 550)는 그가 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째 수감 생활을 하던 곳입니다. 그는 7년이란 세월을 푸른 죄수복을 입고 어둡고 차갑고 좁은 감방에 갇혀 가슴속에 품어 오던 정신세계와 꿈을 승화시키기 위해 세상을 다시 보려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 자기가 가졌던 정신적 굴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큰 세상을 보고자 합니다. 진정으로 살아가야 할 희망의 세상을 갈구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보았던 세상은 산속에서 눈앞의 나무만 본 세상입니다. 이제 산에서 나와 산을 보고 숲을 논할 때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깨달은 세상은 이전과 다른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르짖습니다. 사람들이여 “세상이 얼마나 크고 장엄한지/ 우리가 얼마나 좁고 작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닫힌 강함이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 건지/ 그리고, 그만큼,/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우리가 왜 미래의 희망인지 /우리가 무엇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는지”를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환해집니다. /눈물 나게 눈물 나게 환해집니다.” 그리고 우리 다 함께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이니, 다시 첫 마음으로, 산으로 걸어가자’고 말입니다.

    

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교직에 몸담았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는 교육 문제를 객관적으로 본다고 자부했는데 퇴직하고 교직 밖에서 교육 문제를 보니 평생 보지 못했던 문제가 보이더군요. 산에서 나왔기에 산속의 문제를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산속에 갇혀 있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나무와 풀, 꽃들만 보입니다. 위로는 하늘만 달랑 보일 뿐이지요. 산이 얼마나 웅장한지, 어떻게 생겼는지, 바람은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 산 전체에 어떤 나무와 풀과 꽃들이 피어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산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보고 겪은 산만이 옳다고 우깁니다. 어떤 이는 외적인 요인에 의해 산에 갇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스스로 산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그 산 이야기만 하면서 산 밖의 세상을 부정하려 들지요. 그것은 자기가 만든 프레임(확증편견-자기만의 원칙과 이론)에 갇힌 배타성입니다.

    

남을 거부하고 내치는 성질인 배타성은 인간적 순수함보다는 정치적이고 권력적입니다. 화합과 창조보다는 대립과 투쟁입니다.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지요. 어떤 이는 그것을 정체성이라 하지만 왜곡된 정체성입니다. 자기 세계를 지키고 자기 세계의 확대를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 하지요. 그래서 배타성이 권력을 가지면 전체주의화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과거 비판했던 권력의 모순의 길을 스스로 걷게 되지요. 그러면서 자기는 정당한 길로 가고 있다고 외칩니다.

    

특히 정치는 인사(人事)라 하였듯이 인사 문제가 그렇습니다. 산속에 갇혀 있으면 내 앞에 보이는 사람만 내 편으로 보이며 그들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지요. 자기 밖에 있는 사람은 보려고 하지 않고, 보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니 주변에 인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재란 쓰려고 하는 의지만 있으면 넘쳐난다’는 당 태종의 말처럼 산에서 나와 시야를 넓히면 함께 할 동지가 참 많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대통령이 된 후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고 적대시한 정치적 원수였던 스탠턴(Edwin M(cMasters) Stanton 1814. ~1869)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군 장관에 임명하면서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고 하였지요. 좋은 인재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구할 때처럼 산에서 나와 큰 세상을 보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표하면서 198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역사이고 노동해방의 상징이며 신화가 되었습니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검거되어 구속수감 되기 전인 7년간의 그의 시(詩)는 시대의 아픔이고 혁명의 불꽃이었지요. 얼굴 없는 시인이었던 그는 1991년 검거되기 전에 신문에 팩스 통신을 보내는 등 자기 정체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오랜 수배 생활과 지친 자신을 달래며 진정으로 그가 바라는 세상을 노래하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그의 정신세계가 무의식 속에 작용했는지 모릅니다. 프랑스의 자유분방한 좌파 지식인 앙리 레비가 30대 초반에 쓴 책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박정자 옮김, 프로네시스)이 떠오릅니다. 그는 1970년대 소련과 동구를 여행하면서 노동자해방과 자유, 평등의 사회 실현이란 지극히 인간적 얼굴을 한 공산주의는 전체주의와 탄압으로 지독한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지요. 그는 스탈린주의, 히틀러주의, 마오이즘 등 모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출현했지만, 전체주의적 야만성으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박노해 또한 자기 내부의 전체주의성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전체주의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변절자라 하지만, 그는 산에서 나와 산 전체를 보고 암스트롱처럼 지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자기만의 눈이 아닌 진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박노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말 노동해방이며 계급 투쟁이며 사회주의 혁명이었을까요? 그 가장 확실한 대답은 그 자신이 해야 하겠지만 우린 그의 삶과 시를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사회주의 혁명이나 계급 투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소박하고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에 나오는 시 “상쾌한 아침을 맞아/즐겁게 땀 흘려 노동하고/ 뉘엿한 석양녘/동료들과 웃음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평온한 저녁을 위하여》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주는/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하늘》을 보면 대뜸 알 수 있습니다. 그것입니다. 사람대접해주는 일터에서 일한 만큼 대접받고 일이 끝나면 가족과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서로를 위하는 평화로운 저녁을 가지고 한 하늘아래서 모두 사랑하고 존중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여기 어디 계급 투쟁이나 혁명의 이야기가 있나요. 사람들은 그를 각자의 프레임으로 필요에 따라 해석하고 인용하고 끌어들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적을 만들고 어떤 이는 우상으로 만들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그때는 진영의 편에 서서 그를 이해했습니다. 새롭게 『노동의 새벽』을 읽으며 나만의 프레임에 갇혀 그의 시와 꿈을 오해했음을 반성합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박노해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북 분단만큼, 지금의 여야 대립만큼, 철저한 이념과 정쟁으로 분류되고 예단 되어 한쪽에선 시대의 아이콘으로, 다른 한쪽에선 철저히 배척되어야 할 위험한 자로 치부되었지요. 그가 한 몸으로 두 진영의 모순된 평가를 받는 것은 그 시대의 모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를 공산주의자로 분류하고 그의 시를 읽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의식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창조를 향해 성숙해 가야 하는데 1980년대의 편견이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토록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대립이란 모순 속에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정(正)과 반(反)이 대립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가지 사건을 두고도 해석이 다양하고 각자의 프레임으로 예단하게 되지요. 그것이 지나치면 아집이 되고 아집의 프레임으로 타인의 프레임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전체주의가 됩니다. 그것은 모순입니다. 모순을 안고 모순의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정치적 세력과 권력이지요. 정과 반을 모두 깨달으면 합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진영과 배타성의 논리에 빠져 권력 쟁취에 몰입하면 합의 경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릅니다. 오로지 진영의 승리만 보입니다. 그래서 아예 합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진영의 승리만을 향해 돌진하지요. 그래서 투쟁의 세상을 만듭니다. 작금의 정치인들이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면 정치인이나 대중이나 진영의 논리에 서서 편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 있기 전 일본의 침략 징후를 놓고 논쟁을 벌이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론을 백지화시키고 논공행상을 벌이던 그들, 왜적이 쳐들어오면 이 한 목숨 바쳐 충성을 맹세하며 단칼에 쳐 죽이겠다고 장담하던 신립 장군은 상주 전투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후퇴하다가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모두 죽었지요. 그것은 전술상의 배수진이 아닙니다. 퇴로가 차단된 상태의 어쩔 수 없는 배수진이었지요. 논공행상의 결과가 어떤가를 말해 줍니다. 그 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중원 대륙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정쟁만 계속하다가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되지요. 그것은 구한말에도 마찬가지였고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좌우 지방의 대립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방 후에도 이념 대립은 실리를 넘어서는 진영의 싸움이었지요. 오랫동안 용공이냐 반공이냐. 친북이냐 반북이냐의 대립이 이제는 적폐와 반 적폐로 또다시 이상한 형태의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으로 치닫다가 최근에는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앞두고 임명과 임명 불가로 나라가 두 조각 나고 있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수많은 대중이 그 한편에 서서 서로 반목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치인들은 이를 즐기는 것 같아요. 국민과 민생, 국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앙리 레비의 표현처럼 정치적 권력에 눈먼 아주 야만적인 행위로 보입니다. 정말 미래가 안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정치 이야기 “동굴의 비유”는 태어나면서부터 동굴 속에서 두 팔과 두 다리, 목까지 결박되어 앞뒤 좌우로도 볼 수 없고 오직 동굴 벽만 바라보고 사는 죄수 이야기입니다. 죄수는 오직 등 뒤 위쪽에서 타오르는 횃불에 비추어진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살며 동굴 밖의 세상은 보려 하지도 않고 보는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죄수를 밖으로 나오게 했지만, 햇빛이 눈을 부시게 한다고 동굴 밖의 세상을 거부하며 적응하지 못하지요. 오직 그림자를 사물의 실체보다 더 실제적인 것으로 착각하며, 실체와 진리를 보지 못하고 각자의 확증편견(確證偏見)에 빠져 삽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 죄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며 타인을 보려는 자의 ‘자기 성찰’을 강조했습니다. 타인만 보는 자는 자기를 보지 못합니다. 타인을 보기 위해선 먼저 거울 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올곧게 보는 자가 타인도 올곧게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동굴이 아닌 광장에서 젊은이들과 허심탄회한 진리 논쟁을 벌이며 정의의 세계를 향해 갔지요. 모두 자기를 가두어둔 산에서 나와 산 전체를 보며 숲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크라테스가 동굴의 비유에서 죄수를 동굴에서 꺼내어 세상의 빛을 보면서 살게 해야 하는 것이 지식인과 정치인의 사명이라 혀였듯이, 박노해의 말처럼 정치인을 포함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산에서 나와 다시 첫 마음으로 산으로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가두어버린 배타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변증법적으로 정(正)과 반(反)은 합(合)의 전제조건이지 진영의 논리가 아닙니다. 이제 진영논리를 버리고 진정한 합(合)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이 나라가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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