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國民)과 인민(人民)의 사이에?

이상호 | 입력 : 2019/12/19 [14:18]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새로 편찬된 고등학교 『윤리 사상』 교과서에 ‘국민주권’ 대신 ‘인민주권’을 사용하여 논란이 크다. 이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은 조선일보이며, 보수성향의 언론들도 동참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언론 매체는 ‘인민’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국민’과 ‘인민’의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기에 이토록 각을 세워야 하는가? 

 

교과서에 ‘국민주권’이 아닌 ‘인민주권’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한 조선일보(2019.11.30)의 비판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래앤의 ‘윤리와 사상’ 교과서 4단원 191쪽에는 ‘민주주의는 인민이 지배하는 통치 형태’이며 ‘민주주의는 정치공동체의 주권이 인민에게 있고 인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며 ‘민주주의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같은 인민주권의 원리’라고 기술하고 있다. 올해 새로 배포된 ‘윤리와 사상’ 5종 검정 교과서 4단원 ‘민주주의’ 부분을 분석한 결과 미래앤, 비상교육, 씨마스 등 3개 출판사는 ‘인민’이란 단어를, 교학사, 천재교육 등은 ‘국민’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민’이란 단어를 사용한 출판사들은 교육부의 집필 기준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는데 교육부가 2015년 개정한 교육과정 집필 기준은 민주주의 개념교육과 관련해 “인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하여” 기술하도록 권고한다고 했다. 여기에다 다른 보수성향의 매체들과 네티즌들은 만약 ‘인민주권’이라 한다면 ‘국군’도 ‘인민군’이라 하고 ‘국군의 날’도 ‘인민군의 날’로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진보 성향의 매체와 논자들은 [‘인민’은 북한말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갈등을 부추긴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중에서 오마이 뉴스(2019.12.05.) “교과서 속 '인민'이라는 말에 발끈한 <조선>, 갈등 부추기나”(서부원)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부 고등학교 교과서에 '인민'이라는 용어가 삽입되었는데 <조선일보>가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국민’과 ‘인민’을 ‘피아’를 식별하는 기준으로 여기는 셈이다. 남과 북이 긴장 완화를 넘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에 왜 북한에서 사용하는 ‘인민’이라는 말을 쓰냐며 트집 잡는 건 유치한 몽니다. 언어에까지 낡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미는 꼴이다. ‘북한과 중국의 국명에 사용됐으니, 쓰지 말라’는 건가? 북한에는 지금도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순수한 한글 말이 많다.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차용해 온 우리에게 자못 귀감이 된다. ‘인민’은 한때 ‘국민’보다 널리 쓰인 단어였으며 1948년 제헌 헌법 초안에도 ‘인민’이 사용되었다. 지금 초등학생들조차 알고 있는 헌법 제1조 2항도 그땐 이랬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 인민을 기피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을 천시하던 것과 같다. 명색이 보수를 자칭하는 언론이라면, 생뚱맞게 북한 말과 남한 말을 편 갈라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차라리 범람하는 외래어에 맞서 순수한 우리말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게 낫다. ‘민족지로서 정의를 옹호한다’는 사훈(社訓)이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민'은 북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인민’은 ‘동무’와 같이 좋은 말이지만 북한에 빼앗긴 셈이다. 헌법은 한 나라의 지향과 현실을 예단하는 최고의 법인데 우리나라 현행 헌법에는 ‘인민’이 아닌 ‘국민’을 사용한다. ‘인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까지 사용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이 공표되면서 ‘인민’은 북한 공산주의자가 사용하는 용어이고 대한민국은 ‘국민’으로 통일하여 규정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주권이 ‘인민’이 아닌 ‘국민’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질 때 ‘인민’이란 용어논란이 컸다. 유진오 헌법 초안에는 헌법 전체에 ‘국민’이 아닌 ‘인민’이라고 되어있었다. 초안 작성자가 인민이란 어휘를 택한 데는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라 강하여 국가 우월적 느낌을 주는 반면, 인민은 국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하기 때문에 국가를 구성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인 인민이 적절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안의 ‘인민’은 국회헌법기초분과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국호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과 같다.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인 윤치영은 ‘인민’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왜 그런 말을 쓰려느냐. 그런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흥분했다. 이에 찬성론자들은 대한제국의 절대 군주 시절에도 사용한 말이라며 반론했다. 토론은 한참 진행되다가 1948년 7월 1일 시작한 국회 본회의 헌법 초안 제2회독 때 국회의원 진헌식이 몇 개의 조문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문에서는 모두 “인민”으로 수정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역시 윤치영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고 ‘국민’으로 통일되었다. ‘인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좋은 말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겼다는 아쉬움을 안고 포기했다.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금 다시, 헌법』 로고폴리스) 

 

그러면 백성, 신민, 국민, 인민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조선 시대에 백성(百姓)은 ‘백(百) 가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양반과 구별되는 피지배 계층을 지칭했으며 정치적 참정권이 없었다. 또 신민(臣民)은 군주국에서 주권자인 군주에게 충성해야 하는 신하(관리와 백성)를 통칭하는 말이다.  

 

구한 말부터 자주 사용되던 인민(人民)은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을 가리켰다. 로크의 사회 계약설에 따르면 자연인(사람)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사회를 구성하였다. 국민(國民)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국내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위가 주어지는 법적 개념이다. 국민의 신분을 국적(國籍)이라 한다.  

 

시민(市民)은 도시의 구성원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시민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였다. 시민권은 모든 거주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민은 근대로 오면서 주권자의 의미를 강하게 가졌다. 그래서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 전쟁을 ‘세계 3대 시민혁명’이라고 하면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대표적인 시민혁명으로 꼽고 있다. 이후 시민은 사유재산을 가지고 교양이 있으며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시민은 주권자의 뜻을 지닌 국민과 같이 자유를 누리며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인민은 영어로 people이다. 이는 국가나 사회의 대중을 지칭하는 말로 라틴어의 populus에서 유래했다. 인민의 의미는 역사와 함께 변했는데, 계급적 의미로 ‘피지배자’와 주권적 의미로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두 가지로 정착했다. 근대 유럽에서는 귀족과 대립개념으로 사용되었고,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소시민·노동자·농민을 인민이라고 불렀다. 후에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피지배자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주권재민(主權在民)사상을 확립시킨 근대 시민혁명으로 인민은 단순한 피지배자를 벗어나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자리 잡았다. 1863년 A.링컨이 게티즈버그연설에서 한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라는 말은 인민을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며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 주체적 존재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등장하면서 인민의 개념은 변화했다. 레닌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을 계급적·민족적 모순을 안고 있는 존재이면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주체로서,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오늘날 인민은 계급적 시각에서 노동자·농민·지식인·민족자본가 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처럼 20세기 초에 들면서 공산주의자들이 국제공산주의 입장에서 국가(nation)보다 인민(people)을 선호하여 인민을 범세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인민은 민주주의와 멀어져 공산주의 의미가 강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당기관지인 인민일보, 인민은행, 인민법원 등과 같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국호에서부터 곳곳에 전적으로 사용하였기에 인민은 공산주의 용어로 굳어졌다. 

 

위의 논의를 종합하면, ‘국민’과 ‘인민’은 본래의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분단 이후 ‘국민’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말로, ‘인민’은 공산주의와 북한체제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말로 굳어져 왔다.  

 

그러면 ‘인민’과 ‘국민’은 어떤 존재 양식을 갖는가? 우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S.존슨》이 『시인의 생활』에서 ‘말은 사상의 옷이다’라 했듯이 언어에는 말하는 사람과 단체와 시대의 사상과 존재 양식이 담겨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Ort)다. 언어를 어떤 장소로 규정한다면, 존재는 그 언어 안에 거주하는 것이다(wohnen)” 그런 의미에서 언어를 “존재의 집(das Haus des Seins)”이라고 규정했다.(『하이데거의 ‘숲길’』(Holzwege, 신상희 역. 나남 출판사, 2008년) 즉 언어는 존재가 머무는 곳이며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간의 사유(思惟)를 지배하고 복속시킨다. 인간이 언어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부린다. 언어 속에는 사람들의 사상과 삶의 양식이 존재한다. 분명히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의 주장을 받아들일 때, ‘인민’이란 말에는 계급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의미가 강한 정치적 존재 양식을 가진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인민’을 ‘국민’ 대신에 사용하기는 거북하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그 말을 사용함으로써 사상과 이념 대립으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사상과 존재 양식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인민’ 정체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린 지금 ‘국민’과 ‘인민’ 사이에 존재하는 그 장벽을 뛰어넘을 것인가? 과연 북한 정권이 저토록 강하게 우리를 밀어붙이는데 우리에게 그것을 뛰어넘을 역량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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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가지 2019/12/19 [16:13] 수정 | 삭제
  • 구지 인민을 사용하는 저의가 무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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