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과 그랭이질

그랭이질이 필요한 정치판

고영호 기자 | 입력 : 2020/01/29 [08:34]

[뉴스파고=고영호 기자] 주택을 지을 때면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이 기초공사다. 땅을 파고 콘크리트를 타설한 후 그 위에 철근을 조밀하게 엮고 다시 그 위에 일정한 두께의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것이 현대 건축의 기초다.

 

과거에는 주춧돌이 기초의 전부였다. 기둥 둘레보다 두 세배 쯤 하는 넓고 두꺼운 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콘크리트가 보급되기 전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초가든 기와집이든 궁궐이든 이러한 기초의 방법엔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주춧돌 공법의 백미는 그랭이 질이다. 그랭이는 불과 34여 년 전 까지도 흔하게 사용하던 건축 관련 용어였다.

 

 

문헌에 따르면

그랭이는 얇은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으로 집게의 한쪽 다리에 먹을 찍어 선을 그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랭이칼 또는 그래자라고도 부른다. 그랭이를 사용하여 부재의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그대로 다른 부재에 옮겨 그리는 일을 그랭이질 또는 그래질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둥을 초석 위에 세울 때, 벽이나 문설주가 배흘림 기둥과 만날 때, 도리에 추녀를 앉힐 때와 같이 한 부재의 모양에 따라 다른 부재의 면을 가공해주어야 할 때 필요한 작업이다.

 

가령, 기둥을 초석 위에 수직으로 세우고 그랭이의 두 다리 가운데 먹물을 묻힌 쪽은 기둥 밑둥에, 나머지 한쪽은 초석의 윗면에 닿게 하여 초석의 높낮이를 따라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기둥을 한바퀴 돌면 기둥 밑둥에 초석의 요철에 따른 선이 그려진다. 이를 그랭이 선이라 하는데 기둥을 다시 뉘어 그랭이선 아랫 부분을 끌로 따내고 다시 기둥을 세우면 기둥 밑면과 초석이 밀착되어 기둥이 기울어지지 않는다.(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김왕직,2000,발언)

 

  © 고영호기자

    

그랭이질의 대상이 기둥이었던 것은 돌보다 가공이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석재가공의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정과 망치를 이용한 석재가공이 전부였다. 반면 목재의 가공은 톱과 대패 등이 발달하고 끌을 이용한 가공읗 통해 기둥의 아랫면을 돌의 모양에 맞게 그랭이질 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랭이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시대의 상황이나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고 자신과 맞지 않는 것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 보편화 되어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보편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그랭이질을 권하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며 차이를 극복하고자하는 마음가짐의 변화가 시대가 요구하는 그랭이질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당의 이념 앞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동일화 되어가는 것이 그랭이질이 아니다. 그렇게 편향된 그랭이질은 기둥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연출하기 십상이다. 공천만을 기대하며 목소리만을 높이는 행동이 아니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지역이나 국가의 현안이 무엇이고 미래 가치를 위한 판단이 그랭이질인 것이다.

 

현 정권의 문제만을 들추기에 여념이 없는 야당의 정치활동과 자신들의 눈높이와 가치에 대한 주장만을 반복하는 여당의 행위는 모두 국민의 뜻이란 포장으로 말하고 있지만 진정한 국민의 뜻은 여든 야든 그랭이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판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선거는 잘난 놈을 뽑는 게 아니고 잘 할 사람을 뽑는다. 잘할 수 있다는 말보다 잘난 자신을 홍보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 쓴 웃음을 숨기는 민초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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