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모두《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이상호 | 입력 : 2020/03/01 [23:19]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몰래 봄비가 살며시 다녀갔다. 다녀간 시간은 아마 자정이 훌쩍 넘은 새벽으로 치닫는 시간인 것 같다. 나무와 땅이 과하지 않게 촉촉하니 내 마음도 촉촉해지는 것 같다. 봄비 먹은 나뭇가지에 뱁새들이 와서 한참을 시끄럽게 놀더니 언제 갔는지 훌쩍 가버렸다. 그들이 가니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다. 뱁새나 봄비 모두 온다는 기별이나 간다는 인사도 없이 왔다 갔다. 둘은 그런 점에서 공통이지만 내가 왔다고 알리지 않는 것은 밤중에 소슬히 내린 봄비이다. 그런 점에서 봄비는 뱁새보다 더 성숙한 것 같다. 예고 없이 왔다 가는 것이 어디 봄비뿐이랴. 

 

                   비 가는 소리

 

- 유안진(1941~ ) -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음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도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유안진 『 다보탑을 줍다』(창비,2004)-

  

인생도 밤비처럼 왔다가 예고 없이 가는 것 아닌가? 우리가 태어날 때 내가 스스로 ‘나 간다’며 세상에 알렸는가? 다만 어머니들이 그 징조를 알았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생도 봄비 같다. 그래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비 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비 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썰물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음의 음정(音程)이다. 인생이 그렇게 썰물처럼 스멀스멀 멀어지는 불협화음의 음정으로 가는 것 같다. 

 

가는 봄비가 못내 아쉽다. 인생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처럼,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처럼,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같다. 또 화선지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은은하게 번지는 수묵의 그 뒷모습 같다.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시간의 법칙 속에 재촉을 받듯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봄비처럼 나의 삶도 시간의 재촉을 받는 것 같다. 

 

가는 것을 느끼니 왔던 것이 분명하다. 인생도 내가 왔던 것을 느끼며 가는 세월이 아쉬워질 때는 갈 때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삶에서 겪는 수많은 것이 올 때는 무감각하다가 갈 때 무척 아쉬워하고 붙잡으려 애쓰지만 기다려 주지 않고 가버린다. 우리들의 젊음이 그랬고, 첫사랑도 그랬고, 수없이 다가온 사랑과 기회도 올 때는 몰랐다가 갈 때는 못내 아쉬웠다. 삶을 좌충우돌하다가 그들이 오는 것을 못 느끼고 그들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갈 때 비로소 느끼는 그 아쉬움과 붙잡고 싶은 욕망, 그러나 그들은 이미 갈 채비를 완벽하게 하고 떠나간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은 왔다가 간다. 그것들이 올 때 강력하게 우리에게 예고하지 않듯이 갈 때도 그렇게 강력하게 예고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고 붙잡고 즐기고 사랑하는 것은 삶의 감수성과 성찰뿐이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남은 시간만큼은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갈 때 《비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가는 소리를 듣고 보내는 준비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가끔 지인의 이승 하직 소식을 들을 때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좀 더 잘해 줄 걸, 친구와 좀 더 우정을 나눌 걸, 좀 더 진솔하게 살 걸, 후회도 크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금도 왔던 것이 가고 있는데 

 

가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 이치를 알고 자기 위치를 깨닫는 순간일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린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떤 것이고, 어떤 짓을 하여 왔는지를 알게 된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한없는 소유욕과 본능적 욕망에 빠지는 사람도 부지기수인 것 같다. 그것은 나이 들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그 무엇(?)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이리라. 

 

젊은 시절은 그렇다 치자.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지위를 갖기 위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성공이란 단어를 잡기 위해 집착해 온 세월이 얼마인가? 그런데 그 집착이 강한 만큼 무엇을 이루기는 했을지 몰라도 삶에 대한 감수성과 성찰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니 허망하다. 그리고 또 그 허망에 집착한다. 그래서 또 깨닫는다.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삶에 대한 감수성과 성찰은 우리가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그 어떤 집착에 편집되므로 그것을 잃어버렸다. 그러기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집착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수성과 성찰을 회복하는 순간, 인생은 봄비가 대지를 적셔 목마른 생명에게 조용히, 아주 조용히 생기를 주듯 나의 인생과 세상에 생기를 줄 수 있으리라.

 

어쩌면 요란하게 소리치며 얻은 부귀도, 권력도, 명예도 밤에 몰래 왔다 가는 봄비처럼 소리 없이 가버릴 것이다.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시간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도 권력과 부귀에 집착하며 영원히 가지려 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세상은 암투의 연속인 것 같다. 

 

특히 자기가 가야 할 때를 또 가고 있음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정치인들 같다. 정치가나 권력자들은 왜 자기들이 가고 있음을 예고하는 《비가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또 왜 가야만 하는지를 알지 못할까? 마치 마약에 취하듯 권력적 지배욕에 취해 있거나, 그간 지은 죄가 많아 들통날까 두려워 그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 나라 정치인과 권력자들도 이제는 《비가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앤소니 드 멜로(1931~ )는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송형만 옮김, 분도출판사, 2008)에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행복한 삶으로 초대될 수 있으며 그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순과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내적 자유와 열정이 발휘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얻은 내적 자유와 열정이 100세를 사는 김형석 박사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삶을 긍정의 에너지로 이끄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곧 《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서 출발한다. 

 

이제 정말 모두 《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 특히, 정치인과 모든 권력자도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성찰을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세상은 갈등을 딛고 평화의 꽃을 피울 것 같다. 유안진의 시 《비가는 소리》가 잠들어 가는 내 삶의 감수성과 성찰을 깨웠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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