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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범인》의 실체를 어떻게 밝힐까?

이상호 | 입력 : 2020/03/24 [11:06]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여성, 아동, 청소년 등의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통하여 수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체포된 ‘박사방’ 운영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포토라인에 세우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3월 18일 시작되어 3월 24일 아침 249만 7천 명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체포된 ‘박사방’ 운영자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여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얼굴은 철저하게 숨기면서 수많은 타인의 신상은 털었습니다. 범인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선물했지만, 인간을 간악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강력범죄가 늘어날 뿐 아니라,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에 의한 범죄는 지능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범인을 잡기도 어렵고 잡아도 자백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범인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끝까지 자기방어를 하는가 하면 거짓 진술로 수사관과 국민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참을 가려내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종교의 자유 확대는 많은 종교집단과 종파를 탄생시켰습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실제는 돈과 권력을 향한 사기에 가까운 종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범죄와 비리는 진위를 가리기가 더 힘듭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19와 총선 바람을 타고 가짜 뉴스가 더욱 넘쳐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왜곡된 신념과 이념에 의해 거짓 정보를 진실로 믿는 경우가 있고 정치적인 목적이나 개인적인 신념 등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일반 대중 역시 각자의 이념적 편향성이나 정치적 지향성에 의해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믿고 지지하기도 합니다. 

 

정치적 목적이든 경제적 목적이든 종교적인 목적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행위는 범죄행위에 해당합니다. 그가 한 행위가 양심을 속이는 일이건 현행법을 위반한 일이건 그 행위를 한 자는 분명 정당하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우린 일상에서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범죄로 보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범인은 찾아내지 못하고 시간 속에 묻혀 버립니다. 사기꾼을 포함한 모든 범인은 겉으로는 자신을 철저하게 은폐하며 교언영색(巧言令色)하고 불리할 때는 철저하게 침묵을 지킵니다. 특히 비양심적인 한국 정치인들의 침묵과 모르쇠는 극에 달해 있습니다. 신미균의 시 《범인》은 이런 비양심적인 정치인과 범죄자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범인

 

신미균(1955〜 )

  

시커먼 홍합들이 

입을 꼭 다물고 

잔뜩 모여 있을 땐 

어떤 것이 썩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팔팔 끓는 물에 넣어 

팔팔 끓인다 

 

다들 시원하게 속을 보여주는데 

끝까지 

입 다물고 

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간신히 열어보면 

구린내를 풍기며 썩어 있다 

 

-신미균 『웃기는 짬봉』(푸른 사상, 2020)-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인천에 사시는 고모님 댁에 가는 전철에서 내려 무엇을 사 갈까 생각하며 걷는데, 길가에 한 아주머니가 커다란 고무 함지박에 가득 담긴 잉어를 팔고 있었습니다. 꽤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여 큰 놈으로 세 마리를 사 갔습니다. 주방에서 잉어요리를 하던 고모님이 ‘잉어 어디서 샀느냐’고 물으시면서 ‘이 잉어 못 먹는다. 잉어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고모님은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잉어의 속은 기름으로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모든 정당한 것들은 투명하고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냅니다. 혹여 불미스러운 오해를 받더라도 당당하게 그 정당성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 속에 살면서도 자기를 숨기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생활합니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것들은 마치 ‘썩은 홍합처럼’ 군중 속에 묻혀 자기를 은폐하려 애를 씁니다. 

 

“시커먼 홍합들이/입을 꼭 다물고/잔뜩 모여 있을 땐/어떤 것이 썩은 것인지/알 수 없”듯이 범인도 군중 속에 숨어들면 찾기 힘들어집니다. 군중은 평범한 삶의 현장이면서도 구린내 나는 자들에게는 ‘썩은 홍합처럼’ 좋은 은신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팔팔 끓는 물에 넣어 /팔팔 끓였더니” 썩은 홍합은 입을 다물고 있어 가려낼 수 있듯이 상황과 조건의 급변이 이루어질 때 범인도 본색을 드러냅니다. 수사에 있어서 냄비에 넣고 팔팔 끓이는 행위는 극단적인 방법의 수사나 범인이 도저히 견디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팔팔 끓는 물에 팔팔 끓인다”에 생각의 발목이 잡혔습니다. 팔팔 끓이는 일이 범인을 수사하는 방식이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냄비에 넣고 팔팔 끓이는 행위가 밀폐된 공간에서 치명적인 고문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의 특성상 그것은 생각의 비약이라 여기고 치밀한 과학적인 수사라고 생각을 굳혔습니다. 

 

구린내 나는 사람들 역시 군중 속에 평범하게 지낼 때는 잘 모릅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사이비 종교나 이단 집단의 실체도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급반전되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시나 위기가 닥쳤을 때 남은 어떻게 되든 말든 저만 살겠다고 사기와 테러, 무한정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도 구린내 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평소에는 선량한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할 때 돈까지 주면서 자기만 살겠다고 악을 쓰던 상류층 부자 칼 호클리(빌리 제인)의 그 검은 속내도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사이비와 사기꾼을 포함한 모든 범인은 자기를 숨기고 묵비권을 행사하는데 선수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양의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고 평범하게 어울립니다. 사기꾼들은 먹이가 포착되면 간이라고 빼 줄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하려 들지요. 그게 아니면 어떤 약점을 잡아 위협하기도 합니다. 모든 범인은 초기엔 항상 침묵을 지키거나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증거가 나오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면 자백을 하거나 썩은 홍합처럼 침묵을 지킵니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인 범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입을 꽉 다물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정치인들입니다. 자기들이 유리할 때는 스스로 입을 열고 함부로 말을 하다가도 불리할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지요. 특히 청문회 때 ‘모르쇠와 침묵, 기억 안 납니다’로 일관하는 그들을 보면 정말 구역질이 납니다. 저토록 기억력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위직이 되었고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국민이 속은 것이지요. 그런 부류의 정치인들 역시 썩은 홍합의 일종입니다. 우린 그런 인물을 가려내는데 이성적 능력을 더 발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코로나 19’사태로 드러난 신천지라는 종교집단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전도 방식에서도 신천지임을 숨겼으며, 운영 실태도 상당히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방식도 양파 껍질 벗기듯 곤란할 때 하나씩 드러내다가 행정조사 등으로 밝혀진 것만도 상당합니다. 그래도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상당수의 신도도 자기들이 신천지 교인임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코로나 19 확진 이후에도 신천지 교인임을 숨기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물론 개인 신상을 모두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만약 당당하다면 그 정도는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신천지 피해자 연대가 교주 이만희를 고발하고 시위를 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숨기는 것은 모두 지향하는 것과 방법, 내용에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천지 같은 종교집단도 의혹이 많기에 실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죄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과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유입니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J.S.Mill 1806〜1873)도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여야 하되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은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인의 자유는 숭고하고 보장되어야 하되 타인과 공동체에 위해를 주는 모든 행위는 자유의 한계를 넘어선 범죄에 해당하며 종교의 자유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기는 감언이설로 상대방을 속여 이득을 취하고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행위입니다. 종교집단을 만들고 포교 활동을 하는 것과 종교를 믿는 것은 분명 종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타인에게 심리적, 신체적, 경제적 손해를 끼치고 나아가 영혼까지 저당잡는다면 그것은 범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종교 행위가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종교의 지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여러 종교집단의 행위가 그랬지만,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시간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에서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인(仁)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고 했습니다. 사기꾼과 사이비 등 모든 범죄는 교언영색하고 선동적입니다. 과거의 모든 독재정치, 특히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서 보았듯이 지나친 표퓰리즘과 선동정치는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여 결국 독재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선동정치도 일종의 사이비이며 사기입니다. 예수그리스도도 포교와 기도는 진리의 말씀으로 진실하고 조용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모든 행적에서 선동적 유세나 감언이설은 없었습니다. 모든 정상적이고 건전한 종교집단은 선동적이거나 감언이설이 없습니다. 설령 부흥회를 하더라도 그렇게 선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단 종교나 사이비 종교는 특정인을 교주라 칭하고 메시아처럼 대합니다. 그리고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독설과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런 선동정치와 사이비 성격을 지닌 종교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안전합니다. 특히 현대는 물질적 풍요는 누리고 있으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지고 소외를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동정치나 정상적이지 못한 종교집단은 인간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며 강하게 접근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표풀리즘과 선동,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표퓰리즘과 선동정치, 사이비 종교 등은 결국 인간과 공동체에 해를 끼칩니다. 그래서 일종의 범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 정당성을 유세하며 불리하면 침묵합니다. 인간다운 건강한 세상을 위해 그런 사이비나 선동정치, 사이비 종교와 이단은 사라져야 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이성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범죄행위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범인을 색출하여 뿌리 뽑는 의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F.M.1821〜1881)가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인간은 조용한 곳에 혼자 있기를 원하며 ‘가능한 한 남이 자기를 잊게 하기 위해’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것은 타산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본능이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고 했듯이 모든 범인은 자기를 숨기고 침묵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그래서 밝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범인은 잡고 범죄는 밝혀내야 미래는 안전해집니다. 

 

범인을 밝히는 일은 홍합을 냄비에 넣고 팔팔 끓이는 것처럼 치밀하고 지속적인 과학적인 수사입니다. 여기에는 수사관의 전문성과 치우치지 않는 사명감이 절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고차원적인 과학수사로 모든 범인을 색출하는 일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절대 필요할 것입니다.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살포 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와 검찰이 20년 넘게 집요한 과학수사로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찾아내고 처벌하였듯이 인간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범죄와 정치 사회적 비리에 대해 지속적이고 치밀한 과학수사를 기대합니다. 

 

거짓 뉴스로 개인과 세상을 교란하는 일이 없는 세상, 인간을 현혹하고 미궁에 빠뜨리는 종교집단이 없는 세상, 국민이 선동정치나 표퓰리즘에 속지 않는 세상, 인간의 삶과 자유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범인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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