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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이제 정말 《껍데기는 가라》

이상호 | 입력 : 2020/04/24 [10:07]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코로나 19가 쓰나미처럼 세계 경제와 인류의 삶을 휩쓸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코로나 19 여파로 실업은 증가하고 소상공인의 삶은 피폐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삶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기업은 도산의 위기에 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빨리 정착되어 모범적인 국민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행이며 위기 극복에 강한 한국인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그러나 경제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치는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그런 가운데 4.15 총선을 성공리에 마치고 승자의 축배와 패자의 혼돈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이번 4.15 총선을 통해 위기에서도 성숙하고 침착한 우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여율 20%의 사전투표도 사상 최대로 많은 인원이 투표하여 성공리에 끝났고, 15일 선거 당일도 모두 침착하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성공적으로 투표를 마쳤습니다. 우려했던 것보다 높은 66.2%라는 투표율은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의 주권 의식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4.15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 압승으로 300석 중 180석을 차지하는 거대 여당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압승한 여당은 박빙으로 당선된 자가 근 30%대에 이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여당이 압승에 취해 함부로 나아가면 그들을 찍지 않은 40 이상의 국민이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패배한 야당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인식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뼈를 깎는 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를 향한 얕은 꼼수보다는 국민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향한 진심어린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승리한 여당이건 패배한 야당이건 국민과 민주주의에 겸허하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 4.19 혁명일이 지났습니다. 4. 19혁명은 3.1운동과 함께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민족자주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우리 민족의 순수한 혁명정신의 발현입니다. 저는 이번 4.19 혁명일을 맞이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온 국민과 위정자들이 4.19정신을 깊이 가슴에 되새겨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점에 가슴 찡하게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1930 ~ 1969)-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강형철(역음) 김윤태(역음) 『신동엽 시전집』창비,2013>

 

이 시는 당시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에 실려 널리 알려졌습니다. 모든 문학작품은 ‘그 시대성을 반영한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이 작품은 당시의 아픔과 소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4. 19혁명의 불꽃은 5.16쿠데타에 의해 꺼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아득한 기억으로 잠재워지고, 진리와 인간다움보다는 권력과 통제의 길로 들어서고 분단은 고착되어 통일의 길은 묘연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시인은 세상의 어지러움이 모두 껍데기에 천착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모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습니다. 

 

시인은 시의 연마다 《껍데기는 가라》고 반복․강조합니다. 시인이 그토록 가라고 외친 ‘껍데기’는 무엇일까요? ‘껍데기’는 ‘알맹이’에 배치되는 것으로, 시에선 ‘쇠붙이’란 용어로 함축된 폭력입니다. 그것은 권력, 허위, 가식, 외세, 반민주, 반평화, 가짜, 전쟁, 무기, 등이며 특히 민주를 가장한 독재, 국민을 위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한다는 정권의 권력욕, 질서를 가장한 자유의 짓밟음 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껍데기가 있으면 알맹이가 있습니다. ‘알맹이’는 시인이 갈망하는 대상입니다. 시에 표현된 직접적인 알맹이는 4월의 알맹이,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 중립의 초례정 앞에 서서 맞절하는 아사달 아사녀, 향그러운 흙 가슴 등입니다. 그것은 내면에 푼은 진정한 민주주의, 평화와 자유, 외세 없는 자주, 전쟁 없는 통일 등 순수한 정신, 진실한 세상, 본질적인 것, 토속적인 것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껍데기’와 ‘알맹이’에는 시대적 아픔과 미래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시의 시작부터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칩니다. 시인은 왜 시의 시작을 4월의 알맹이로부터 출발했을까요. 여기에 참된 민주주의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4월의 알맹이는 4.19정신입니다. 4.19정신은 민중들의 민권 수호와 외세 배격 정신이며 자주 통일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그 4월의 알맹이는 씨앗으로 발아되어 큰 나무로 성장하지 못한 채 5.16쿠데타에 의해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2연은 1연을 뒷받침합니다.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는 동학혁명 때 우금치 전투의 슬픈 피가 흘러내려 물든 곰나루의 절규입니다. 동학혁명은 1894년에 일어난 반봉건, 반외세, 반부패의 민족, 민권 중심의 민중봉기입니다. 그 민중의 민권 정신이 곧 알맹이입니다. 그 동학혁명의 정신이 4. 19혁명 정신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백낙청도 이 알맹이에 대해 “4·19에서 진짜 알맹이에 해당하는 것은 민중들이 외세를 배격하고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심지어 무기까지 들고 일어섰던 동학년의 곰나루의 그 아우성, 이것이 4·19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살려야 할 알맹이”라고 말합니다.(장석주『한국문학 탐험3』 시공사) 

 

3연과 4연에서 시인이 바라던 세상을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고 했을 때 그 껍데기는 분단의 원흉인 외세와 이념 대립적인 분단 체제일 것입니다. 시에서 ‘이곳’은 한반도를 ‘두 가슴’은 허위의식과 껍데기에 가려진 정치와 남북분단을, ‘그곳까지 내 논’은 사람의 가장 은밀하고 중요한 부위를 드러내 놓은 상태로 모든 부끄러움과 가식을 벗어던진 순수한 마음 그대로 알맹이만 남아 있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초례청은 각기 다른 남녀가 혼례를 치르므로 하나가 되어 서로를 존중하며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중립의 초례청’은 정쟁과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순수한 민족 화합과 통일을 의미할 것입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진 원래 순수했던 ‘아사달과 아사녀’는 신라의 무영탑에 얽힌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순수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모든 허위의식과 거짓을 버리고 진실 앞에 당당히 설 때, 겉으로는 초라하게 보일지언정 매우 빛나게 됩니다. 아사달은 백제 석공으로 사랑하는 아내 아사녀를 두고 신라로 떠나며 꼭 돌아오리라 맹세한 남자입니다. 아사녀는 돌아오지 않는 아사달을 애타게 그리다 연못에 빠져 죽은 사랑의 화신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하며 혼례를 치르는 주인공입니다. ‘부끄럼 빛내며/맞절’하는 그들은 발가벗어 부끄러운 상태이지만 너무도 떳떳한 상태이기에 빛나는 몸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정치인은 부끄러움과 허울을 벗고 마주하여 화합의 길로 가기를 바라며, 남북한 역시 이념과 체제를 버리고 순수한 민족통일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본질적 소망을 담았다고 여겨집니다. 

 

마지막 연의 “한라에서 백두까지”는 통일된 한반도 전체를, ‘향그러운 흙가슴’은 부정한 외세나 부당한 정권이 없는 순수함만 남은 한반도 전체(우리 민족)를 ‘그, 모오든 쇠붙이’는 평화와 안정을 깨트리는 부정한 정권과 외세의 총체적인 폭력인 껍데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했을 때 안정된 국민의 삶과 통일된 조국의 순수한 민족, 민주의 삶을 위하여 폭력적인 모든 부당한 권력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60년대의 한국 상황에서 쓰였지만, 늘 현재 진행형으로 현실을 응시하게 하면서 올곧은 내일을 그려보게 합니다.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은 정치적 대립과 권력의 허위의식인 껍데기에 의해 국민과 민족의 순수한 소망이 유린당한 적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치는 항상 폭력을 수반합니다. 정치의 외연엔 항상 권력이 있으며 권력은 타인을 지배하고 계속 집권하려는 야만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의란 이름으로 정권에 반하는 세력은 개인이든 집단이건 억압하려 듭니다. 그 과정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폭력은 발생하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사건에는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현 정부도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란 원인에 의한 촛불정신의 기초 위에 섰습니다. 촛불정신은 3.1정신과 4.19정신의 연장으로 해석합니다. 현 정부도 촛불정신이란 숭고한 국민의 명령을 받들겠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래서 현 정부가 들어설 때 유독 3.1정신과 4.19정신을 강조한 것이 강렬한 국민(민중)의 여망을 실현하려 한다는 의지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촛불정신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합니다. 현 정부는 정권욕이란 껍데기를 버리고 촛불정신을 훼손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혁명이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의 정신과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인 정권욕에 의해 혁명의 본질은 왜곡되고 혁명은 미완의 상태에서 허우적거리지요. 동학혁명을 보면 구한말 열강이 침탈해 올 때 조선은 분열과 혼란이 극에 달하였고 조정은 무능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동학혁명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할 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들을 물리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과 부정부패의 청산을 통한 평등하고 인간다운 민중의 삶을 꿈꾼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눈이 먼 껍데기 조정은 외세를 끌어들여 그들과 합세하여 그 소망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 껍데기가 알맹이를 짓밟은 것이지요.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렬했던 민중운동인 3.1 운동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고 민족이 하나로 뭉쳐 민족 자주독립 의지를 드러낸 쾌거였습니다. 그리고 독립의 가능성을 믿은 민족 지도자들은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지요. 그러나 곳곳에서 출범한 임시정부는 각기 다른 이념과 독립투쟁 방식으로 분열과 혼란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었지만, 분열은 계속되었고, 일제의 교묘한 폭압은 더해갔지요. 그래서 수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이 좌절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민족 지도자들은 3.1정신은 뒤로하고 이념과 권력, 방법적 노선에 집착하였지요. 그것이 외세에 의한 해방과 남북의 이념적 분단 요인을 가져온 원인이기도 합니다. 3.1정신 그 알맹이는 침전되고 권력과 노선이란 껍데기만 춤춘 결과입니다. 

 

분단은 6.25 전쟁이란 처참한 희생을 치르게 하였고 3.15 부정선거를 기점으로 폭발한 4.19혁명은 부정부패의 척결과 외세 배격을 통한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거대한 민중 항거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탄생한 정권은 신구 세력 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무능했고 혼란이 계속되어 5.16쿠데타를 초래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불과 3,000도 안 되는 병력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는 점이 궁금합니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당시 국정통솔권이 있던 내각 수반인 장면은 수녀원에 숨어버렸고, 윤보선 대통령과 장도영 장군 등 주요 인사들은 박정희의 쿠데타 음모를 눈치챘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윤보선은 1961년 5월 17일 아침 11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 매그루더와 주한 미국 대리 대사 마셜 그린(59년∼61년)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들에게 ‘국민들의 현 정부에 대한 불만과 환멸은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국민은 더이상 장면 내각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헌법은 고통을 충분히 줄이지 못했고, 약속한 실업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쿠데타를 수동적으로 지지하는 것 같았으며, ‘쿠데타로 장면 내각이 무너졌을 때 만세를 부른 사람도 많았다’는 증언도 있었답니다.(박태균<윤보선, 꺾이지 않는 그러나 시류에 흔들리는 야당의 지도자>『한국사 인물 열전3』 돌베개, 2008) 이는 당시 정국이 얼마나 엉망이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민주주의와 국권을 지키고 국가의 중흥 발전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뒷날 3선 개헌과 유신 헌법을 통한 1인 영구 집권을 모색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한 것은 역시 민주 수호와 국민의 삶이란 알맹이보다는 껍데기인 권력욕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박정희 정권이 끝까지 쿠데타와 독재 세력으로 정통성의 시비를 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혁명이 퇴색되는 것은 관습적 혁명론과 낭만적 혁명론에 빠지기 때문이며 혁명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습적 혁명론은 단시간에 구체제를 척결하고 신체제로 전환을 바라는 인식으로 엄청난 희생과 반발을 초래합니다. 낭만적 혁명론은 혁명의 신체제에 대한 비전과 상상이 구체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혁명성만 내세우며 새로움에 기대만 거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선언만 강하고 실제는 부족하여 점차 그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 3.1정신과 4.19정신의 계승이라고 해석되는 촛불정신을 내세운 현 정권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그 관습성과 낭만성을 동시에 간직하면서 비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정권 지키기에 몰입한 나머지 혁명성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긴 것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모든 혁명에는 혁명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3.1정신, 4.19정신, 촛불정신 등 순수한 혁명정신은 미완의 상태로 침전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기회가 되면 혁명정신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모든 혁명정신이 그 소명을 이루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며, 특히 지속적인 성찰에 의한 포용과 결집이라는 통합력과 철저한 자기희생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혁명의 본질은 사라지고 권력의 쇠붙이나 정쟁만 남게 되어 또 다른 분열을 초래하지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미완 되고 뒤틀어진 혁명정신의 회복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집권욕에 빠진 정권과 권력은 가고 자유와 평화, 민생과 인권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알맹이만 남을 것을 소망합니다. 그 몫은 정부와 정치인의 몫만 아니라 국민의 몫이기도 합니다. 

 

4.15 총선이 끝난 지금 새로 당선된 제21대 국회의원과 특히 180석을 넘기는 거대 여당과 정부에 정권욕이란 껍데기를 버리고 민생과 국가발전,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승자로서 그들이 내세운 촛불정신의 본질에 충실한 관용과 포용의 정치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코로나 19 극복’을 통한 민생의 안정과 발전이라는 국가적 위기 극복의 과제를 앞두고, 정치지도자들이 진짜 알맹이를 위해 껍데기를 버리는 용기 있는 합리적인 정치를 하길 바랍니다. 야당도 수구적인 태도를 버리고 국민이 바라는 야당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성찰이 있기를 바랍니다. 국민도 냉철한 가슴과 치우치지 않는 눈으로 우리의 알맹이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시대를 성찰하면서 외칩니다. “이제 정말 《껍데기는 가라》 그리고 그 본질만 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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