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비록《절정(絶頂)》에 서 있을지라도

이상호 | 입력 : 2020/10/29 [09:09]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이상호] 코로나 19에 독감 불안이 닥쳐온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세계는 트윈데믹의 불안에 사로잡히고 있다. 만약 트윈데믹이 유행하면 코로나 19와 독감 바이러스가 뒤섞여 어떤 변종을 만들어 낼까 두려워한다. 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된 사람이 발생하면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불안까지 있다. 최근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더욱 불안하다.

  

이런 가운데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 닫는 중소기업과 도산하는 자영업자, 실업자가 늘고 있다. 코로나에 교역량은 18.3%나 감소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나? 언제까지 재난지원금으로 버틸 수 있을까?

 

올 겨울은 한파가 기습적으로 덮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집값 상승은 물론 전세와 월세가 급등하여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은 날로 커져 간다. 그래도 정치는 정쟁(政爭)으로만 치닫고 있다. 정치와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습한파가 덮치면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서민들이다. 우리는 혼란한 정치 상황, 불안한 경제, 사라지는 일자리와 증가하는 실업자, 코로나 19와 독감 불안, 한파 등 십중고(十重苦)에 시달릴지 모른다. 

 

겨울을 맞으면서 상당수의 국민이 삶의 절정(絶頂)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록 삶의 절정(絶頂)에 서 있을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육사가 시 《절정(絶頂)》에서 절규했듯이. 

 

절정(絶頂)

 

―이육사(1904∼1944)-

  

매운 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동영 편저 『한국 현대시인 연구 ❷ 이육사』 문학 세계사,1992-

 

  

이 시는 기-승-전-결의 시상 전개를 통해 4연 8행의 간결하고 강렬한 어조로 절망을 이겨내고 희망을 갈구하는 초극(超克)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힘차고 희망적이다. 강한 위기 저항 의지를 드러낸다. 《청포도》와 《광야》처럼 단숨에 읊을 수 있다. 거침없이 낭송하다 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역시 좋은 시는 삶에 힘을 준다. 

 

1연에서 3연까지는 극한 상황에 처한 시인의 처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맥락이다. 그리고 4연에서는 그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저항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제1연에서 “매운 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 오다”고 한 것은 영화 <해운대>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사람들이 아비규환으로 밀려가듯이 타자에 의해 휩쓸려 북방으로 온 것이다. “매운 계절”은 일제의 폭압이란 가혹한 현실이다. “채쭉”은 뒤에서 내리치는 “채찍”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채찍에 갈겨 참혹한 현실의 북방으로 이동되었다. 고단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것은 화자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이기도 하다. 

 

그렇게 휩쓸려 온 몸이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 있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이니 더는 오를 곳이 없는 한계 상황의 공간이다. 그런 처참한 현실, 그것도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 있다. 함부로 발을 내디디다간 발과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칼날에 찔려 죽는다. 얼마나 앙칼지고 아슬아슬한가?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명(絶命)의 순간에 서 있다. 

 

위의 1연과 2연은 시인(우리 민족)이 극한 상황에 서 있음을 말해 준다. 제1연에서 북방으로 휩쓸려 온 것은 수평적 극한 상황으로의 강제이동이다. 제2연에서 하늘도 그만 지친 서릿발 칼날진 고원에 서 있는 것은 수직적 극한 상황으로의 강제이동이다. 수평적, 수직적 극한 상황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모든 공간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더는 물러서고 견딜 수 없는 총체적 극한 상황인 《절정(絶頂)》이다. 

 

시인은 그 《절정(絶頂)》에서 주변을 돌아본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좌우 상하를 둘러보니 두 무릎을 꿇을 곳조차, 한발 내디딜 곳조차 없다. 두렵다. 제1연과 2연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극한 상황을 제3연에서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시인과 민족은 물리적인 극한 상황뿐 아니라 심리적인 극한 상황에도 처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제4연에서 해답을 찾는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시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이것은 민족 모두가 절대 극한 상황에서도 차분히 생각에 잠겨 극복할 궁리를 찾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인은 역설적으로 암묵적 결론을 내린다. 그 극한 상황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저항해야 한다. 이겨낼 희망과 의지를 키워야 한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말한 데는 그런 희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 겨울과 강철은 차갑고 강하다. 혹독한 시련의 상징이다. 무지개는 비 온 뒤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형상이다. 희망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강철로 된 무지개는 강한 초극 의지와 희망을 드러낸다. 비록 일제의 폭압과 초근목피로도 살기 힘든 혹독한 겨울이란 《절정(絶頂)》에 서 있지만, 마음을 단단히 잡고 이겨내자는 결의이다. 

 

시어(詩語)들에는 시의 흐름과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우선 각 연의 결구인 “오다”“서다” “없다” “보다”에 담긴 의미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과 심리적인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강제로 ‘북방으로 휩쓸려’와서(오다) 고원의 칼날진 서릿발 위에 서(서다) 있는데, 무릎 꿇고 한발 내디딜 곳조차 (없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생각하며 희망과 의지를 다짐한다. 

 

“매운 계절” “북방”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 “강철로 된 무지개”도 같은 흐름이다. “매운 계절”은 시간상의 극한 상황이며, “북방”은 공간적 극한 상황이다. “고원”과 “서릿발 칼날진 그 위”는 시공을 망라한 총체적인 극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 생각하면서 역시 희망과 의지를 다진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이육사의 독립 투쟁 활동을 살펴보자. 이육사는 1925년 삼형제가 함께 항일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927년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폭탄 투척 사건의 혐의를 받고 투옥되어 264번의 수인 번호를 부여받고(이육사란 이름을 그때부터 붙였다고도 함)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출소한 이후에도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검속되었다가 풀려났다. 1926년부터 북경을 넘나들었으며, 1932년 남경의 조선 군관학교에 입교하여 1933년에 제1기생으로 수료했다. 권총사격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만주와 북경, 남경을 오고 가면서 독립투쟁을 하였다. 이육사는 조선 땅에 들어올 때마다 감시와 구류를 당했으며, 1943년 7월 백형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으나 쫓기듯 떠났으며, 그해 가을 서울에서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었다. 이듬해인 1944년 양력 1월 16일 새벽 5시에 북경 감옥에서 별세했다.(이동영 <이육사의 항일 운동과 생애>,이동영 편저 『한국 현대시인 연구 ❷ 이육사』 문학 세계사,1992)이런 그의 삶을 보면 삶 전체가 《절정(絶頂)》에 서 있었다고 하겠다.

  

이육사에겐 나라가 독립되어 고향에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독립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삶의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육사의 시 《절정(絶頂)》은 《청포도》에서 《광야(廣野)》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고 여겨진다.

  

1939년에 발표된 시 《청포도》에서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평화로운 고향마을을 그리는 소망을 담았다면, 역시 1939년에 발표된 《절정(絶頂)》은 일제 폭압이란 절정에 서 있으면서도 독립과 삶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뒷날 유고로 남아 우리에게 애송되는 시 《광야(廣野)》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승화되어 소망의 성취를 이루는 것 같다(참고로 광야는 1942년〜1943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이 엄습해오는 폭압적 위기에서도 극복의 <의지>를 잃지 않으며, 딛고 일어서서 결국은 《광야(廣野)》에서 목놓아 부르며 그 소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리움-의지-성취>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해된다. 

 

《청포도》에서 《절정(絶頂)》과 《광야(廣野)》로 이어지는 시의 계절적 특징을 볼 때, 《청포도》는 “내 고장 7월은”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늦여름과 초가을이다. (음력으로 7월은 8월 말이나 9월이다. 청포도는 8월 말에서 9월에 익는다.) 그 계절엔 풍성한 고향이 그리워진다. 《절정(絶頂)》의 계절은 혹한의 겨울이다. 혹한의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 이겨내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광야(廣野)》는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등으로 미루어 봄으로 향한 길목의 늦겨울이다. 그 길목은 해빙(解氷)과 해방(解放)의 길목이다. 계절적 측면에서 시의 연관성을 보아도 이 마을 전설이 청포도 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으나, 현실은 혹한의 겨울에 처해 갈 수 없다. 그러나 “강철로 된 무지개”를 품는 마음으로 이겨내어 결국엔 매화 향기 그윽한 독립된 평화의 고향에서 기쁨의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꿈을 꾸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육사가 이 시를 쓴 것이 1940년이니 일제의 전쟁 광기가 극에 달하여 조선 수탈과 민족 말살이 잔인하게 자행되던 시기였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한반도를 중국 침략의 병참 기지화했다. 이에 따라 조선 수탈은 극으로 치달았다. 민족 독립운동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조선 사상범 보호관찰령 등을 공포하여 독립운동가의 통제뿐 아니라 그들을 암암리에 지원하는 민간세력을 완전히 끊고자 하였다. 역사 날조를 통해 일선동조론 등을 펴면서 조선 지식인들을 탄압하여 매수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지배에 광분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국가총동원령을 내렸고, 군량미 확보를 위해 산미증식 계획을 발표하고, 미곡 공출제를 시행하여, 조선 민중은 식량을 배급받게 되었다. 조선 민중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으며 살길을 찾아 만주로, 간도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는 사람들 등 실향민이 급증했다.

 

광기에 빠진 일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의 계획에 따라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휴가를 즐기던 미국 진주만 기지를 기습공격했다, 일본의 항공모함 기동 타격대는 미국 정찰대에 포착되지 않은 채 하와이 북쪽 440km 지점에서 급강하 폭격기와 뇌격기(雷擊機) 등 360여 대의 항공기를 2패로 나누어 출동시켜, 새벽 공기를 뚫고 진주만 함대에 집중포화를 쏟아부었다. 같은 날, 타이완(臺灣)기지의 일본 폭격기들은 필리핀에 있는 미국의 클라크 군용비행장과 이바 군용비행장을 공격했다. (현지 시각으로는 12월 8일). 미국 극동군이 보유하고 있던 항공기의 50% 이상이 파괴되었다. 미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자행한 일제의 폭격에 치명상을 입었다. 

 

일본의 기습공격은 전쟁에 중립을 주장하던 미국국민과 의회를 분노하게 했고, 전쟁 중립 주장을 말끔하게 씻어 냈으며, 미국국민을 단결하게 했다. 12월 8일 미국 의회는 만장일치(반대 1명)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가결했고,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미국 제32대 대통령, 1882년〜1945년) 대통령은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이 기선을 잡는 듯했으나, 미드웨이 해전을 전환점으로 대세가 기울어갔다. 일본의 전황은 점점 어려워졌고, 본토까지 위협을 당하게 되었다. 광분한 일제는 지원병제와 징용제, 정신대라는 미명으로 조선의 젊은 남녀들을 강제로 동원해 갔다. 

 

조선은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극도로 지쳐갔다. 국내의 합법적인 민족 운동은 보호관찰령과 국가 총동령에 의해 거의 말살되었고, 상해임시정부의 대일 투쟁도 크게 위축되어 무장 투쟁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육사는 민족의 삶과 독립 투쟁에 최대의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은 그 상황을 《절정(絶頂)》이라 여긴 것 같다. 

 

이육사는 이러한 극한적 위기상황을 시로 형상화하면서 민족 모두가 그것을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를 갖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는 일제의 폭압적 위기 상황에서도 차분히 생각하여 희망을 잃지 말고 저항하면서 독립을 이루자는 강한 의지와 독려가 담겨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에도 6.25 동족상잔, 4.19, 군부 쿠데타, 금융위기 등 절정(絶頂) 같은 위기를 겪었지만 극복했다. 그런데 지금 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의 위기도 《절정(絶頂)》과 같다. 그러나 그에 대처하는 자세와 방법은 과거와 큰 차이가 있다. 일제 폭압 때나 6.25, 금융위기 때는 절제와 의지로 이겨내려 했지만, 지금은 정쟁(政爭)과 재난지원금, 한없이 돈을 푸는 복지 등으로 이겨내려 한다. 당장은 로마 시민처럼 국민이 환영한다. 그러나 불안하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 때 안토니우스 역병(The Antonine Plague)이라는 역병이 돌았다. 로마인들은 이전의 역병과는 차원이 달라 두려움에 떨었다. 역병 피해는 군인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역병이 창궐하는 167년 마르코만니족이 이끄는 게르만족이 침략해 왔다. 철통 무장을 자랑하던 로마군대는 무너져 갔다.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던 황제는 몸소 전장으로 나갔으며 시민들에게 이성과 절제를 강조했다. 외적을 막기 위해 칼을 쥘 수만 있다면 모두 징집했다. 여기엔 검투사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성과 절제를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을 버리고, 마술(미신)을 믿고 기독교를 죽이기 시작했다. ‘음식과 오락’을 익숙하게 즐겼던 로마 군중은 역병 속에서도 검투 경기에 광분하며 부족한 검투사와 비싼 입장료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할 수 없이 황제는 사형수까지 경기장에서 싸우게 하며 군중을 달랬다. 로마는 역병과 외적의 침입, 시민 달래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재정 수입은 줄고 부채는 늘어났다. 그래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때는 게르만족을 물리치고 역병을 이겨냈다.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고 아들 콤모두스(Commodus 161〜192)가 집권했다. 콤모두스는 이성과 절제보다는 군중을 달래고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으며, 군중과 함께 음식과 오락을 즐겼다. 마르코만니족을 쉽게 섬멸할 수도 있었으나 그들과 타협했다. 로마는 점차 피폐해져 갔다. 콤모두스는 결국 살해당했지만, 그 이후 로마는 회복되지 못했다. 안토니우스 역병 이후 키프리아누스 역병이 등장하여 270년까지 지속되었다. 역병과 외적의 침입 속에서도 오락과 낭비를 일삼았던 로마는 회복되지 못하고 서고트족, 반달족, 동고트족의 침입을 받으면서 쪼그라들다가 결국 멸망했다. (에드워드 기번 저, 강석승 옮김 『로마제국쇠망사』, 동서 문화사, 2017. 제니퍼 라이트 저, 이규원 옮김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산처럼 2020)

 

역병은 전쟁 이상으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전쟁이나 역병이 장기화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정쟁(政爭)이며, 나라의 곳간 고갈이며, 국방의 해이이며, 국민 분열이다. 심한 역병은 《절정(絶頂)》과 같다. 그것을 극복하는 내공이 필요하다. 내공은 정신적, 실용적인 면에서 이성과 절제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지도력과 튼튼한 국방과 넉넉한 나라의 곳간이다. 국민도 이성과 절제를 존중하며 화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국민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호소했던 윈스턴 처칠 수상의 연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육사가 시 《절정(絶頂)》에서 조용히 눈감아 “강철로 된 무지개”를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린 지금 정부와 국민 모두 이육사가 ‘조용히 눈감아 생각해 낸 강철로 된 무지개’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비록 《절정(絶頂)》에 서 있을 지라도 희망과 의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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