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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서시(序詩)》,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향한 소망

이상호 | 입력 : 2020/12/23 [09:09]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 경실련대표] 신문을 읽다가 가슴에 와 닿는 명문(내가 보기엔) 하나가 며칠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알파고 시나씨(터키 출신·아시아엔 편집장/동아일보 2020.12.18.)의 《국제결혼 ‘신의 한 수’를 물으신다면?》이다.

 

결혼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서로 다른 성격의 남녀가 만나 평생을 다짐하는 협약이다.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국제결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여 결혼하였지만, 불화로 헤어지거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갈등 속에 서로 원망과 비난을 쏟아낸다. 그러나 힘들 것 같았던 국제결혼을 행복으로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혼생활의 3대 원칙을 잘 지키며 산다. 그 3대 원칙은 ‘눈물’ ‘사과’ 그리고 ‘용서’이며, 여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알파고 시나씨는 말한다. 이런 원칙은 부부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행복한 삶에 필요한 원칙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위의 4가지를 실천한다면 한결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서로 상처주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눈물’ ‘사과’ ‘용서’ ‘인내심’의 실천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요즘에는 ‘눈물’ ‘사과’ ‘용서’ ‘인내심’보다는 변명, 공격, 회피, 비난, 편 가르기가 난무하는 것 같다.

  

특히 정치인은 하나같이 비난이 쇄도하기 전에는 자기의 잘못된 말과 행동에 대하여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난하는 상대를 공격하고 무리를 지어 난도질하려 한다. 적반하장으로 잘못을 덮어씌우려 한다. 상당한 대중들도 팬덤화되어 잘잘못에 대한 이해와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편을 갈라 싸우고 비방한다. 사실과 이치, 양심과 정의는 필요 없고 내 편과 네 편만 존재한다. 모두 부끄러움을 잊은 양심 실종자들 같다. 

 

나뭇가지를 싸늘하게 스치는 찬바람을 잠시 맞이했다. 콧등은 싸늘하지만, 답답했던 가슴은 뚫리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보다가 내 지난 삶도 뒤적거려보았다. 윤동주의 시집을 펼쳐 《서시(序詩)》를 읽었다. 윤동주는 왜 자신의 시집 맨 앞에 이 《서시(序詩)》를 두었을까? 생각해 보니 《서시(序詩)》는 윤동주의 시의 방향이며, 줄기이며, 삶의 길이었다.  

 

서시(序詩)

 

-윤동주(1917~1945)-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한국 대표 시인 100인 선집 33, 미래사, 2004)-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한국 대표 시인 100인 선집 33, 미래사, 2004 <별똥 떨어진 데>). 윤동주는 늘 밤에 하늘과 별들을 보며 꿈을 꾸고, 삶을 고뇌하고 성찰하며, 겹쳐오는 복잡한 마음을 시로 쓴 것 같다. 그의 시 대부분은 밤과 별의 상념에서 왔다. 윤동주에게 밤과 별은 꿈과 고뇌, 성찰과 사랑, 다짐의 시공간(時空間)이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윤동주를 <밤과 별의 시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는 총 2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연은 단 한 줄이다. 균형미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이 지닌 균형미는 단단하다. 그리고 2연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엄청나다. 삶에 대한 진한 고뇌와 성찰, 고백과 의지가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섬세한 서정이 배어난다. 

 

제1연에서 시는 고뇌로부터 출발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이 표현에서 우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순수한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한다. 우린 가공할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에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향해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혼내기도 한다. 그만큼 하늘은 순수 무궁하며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절대적 존재이다. 그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다. 여기서 “하늘”과 “우러러”라는 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하늘”은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경천애인(敬天愛人)사상의 근원이다. 하늘은 앞서 말했듯이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절대 존재로서 보편 무궁한 영원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 명을 거슬릴 수 없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신화의 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숭배했다. 우리 할머니들도 정화수 떠 놓고 하늘에 빌었다. 서양에서도 하늘은 우주를 주관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러니 하늘을 공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경천(敬天)사상이다. 경천사상의 저변에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숨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을 공경하는 삶이 못 된다. 하늘을 공경하지 않으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 그러기에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것이다. 

 

인간은 땅을 딛고 땅 위에서 산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다. 그러기에 하늘은 “우러러” 볼 수밖에 없다. 천명(天命:하늘의 명)은 내 의지대로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따라야 하는 순명(順命)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면 벌을 받듯이 순명(順命)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그래서 이 “우러러”란 말에는 “바라보다” “추종하다” “외경심으로 공경하다”는 절대 순종의 의미를 담고 있다. 윤동주는 집안 대대로 기독교인이었으며, 그 또한 기독교인이었다. 그에게 하늘은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경천사상을 넘어 “우러러”보아야 할 순명(順命)의 대상으로서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시인은 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다. 이 표현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의미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윤동주가 생존했던 당시로 돌아가 보자.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조선 민중들을 마구잡이로 전장(戰場)으로 끌고 갔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수탈과 핍박을 일삼던 시기였다. 조선 지식인들을 탄압하였고, 온갖 협박과 회유로 일제에 협력하게 하였고, 일제를 찬양․선동하는 글을 쓰게 했던 시기였다. 그 회유와 협박을 못 이겨 일제에 협력한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조를 지키고 살아가기가 죽는 것만큼이나 힘든 세상이었다. 그런 혼탁한 세상에서 올곧게 지조를 지키며 자신과 민족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삶은 양심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는 삶이다. 나만 살겠다고 가족과 민족을 배신하지 않는 삶이다. 정직과 의리를 말하면서 거짓, 선동, 편싸움과 타협하는 삶이 아니다. 여기에는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순결한 도덕적 삶을 살겠다는 시인의 고뇌와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삶은 다음 행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와 연결 지어야 시의 의미가 살아난다. “잎새”는 우러러보아야 할 “하늘”을 이고 있는 “땅”의 존재이다. 땅의 존재 중에서도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하늘”은 “땅”과 연결되어 우주 공간을 형성한다. 하늘은 무궁 무한한 절대적 존재이지만, 잎새는 아주 작고 형편없는 디테일(detail)한 존재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했다. 여기서 바람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바람에도”라는 말의 “도”에 담긴 의미에 주목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바람”은 하늘과 땅 사이를 연결하며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바람은 형제도 없고 일정하지도 않으며 붙잡아 둘 수도 없다. 그 바람이 잎새에 일었으니 아주 미세한 바람이었으리라. 그런데 “바람에도”라고 했다. “도”라는 말은 다른 어떤 것들이 있고 덧붙여 말할 때 쓴다. 시인이 괴로워한 것은 바람만 아니라 삼라만상 곳곳에 스며있다는 의미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잎새는 광활한 우주로 향하는 확장과 미세함으로 이어지는 수축의 양면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바람은 하늘과 땅, 잎새를 연결하는 매개체 즉 확장과 수축의 매개체이다. 그 바람은 시인의 괴로움을 땅 위의 아주 미세한 것에서 신비롭고 광활한 우주 공간까지 연결한다. 여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시인의 고뇌의 폭과 깊이가 느껴진다. 그 고뇌는 광활한 하늘에서부터 땅 위의 아주 작은 잎새에 이르기까지 천지 만물 우주 공간에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 몸 깊은 뼛속, 모세혈관까지 스며있다. 시인의 괴로움은 삼라만상 모두가 알며 그 삼라만상에 스며있다. 그 괴로움은 시인의 괴로움이자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괴로움이기도 하다. 

 

부끄럽지 삶을 산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고, 타락한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남을 기만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 아니다. 사랑해야 하는 삶이다. 그런 삶에 대한 시인의 고뇌는 다음 행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반전을 이루며 구체화 된다. 앞서 말한 “하늘을 우러러”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로 거듭난다. 고뇌의 결과 얻은 소명은 “사랑”이다. 무엇을 사랑한단 말인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한다. 어떻게 사랑할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에서 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희망이며 나침반이다. 하늘의 씨앗이며 하늘과 같은 숭고한 존재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을 나침반으로 삼아 길을 걷고 별을 매개로 운명을 가름하는 점을 쳤다. 별은 “길”을 안내한다. 동방 박사들도 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서 예수의 탄생을 확인하고 찬양했다. 그래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바로 그런 별을 찬양하고, 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기를 하늘에 순명(順命)하듯이 우러러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하는 소명(召命)의 실천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잎새”와 연결된다. 잎새는 죽어갈 수밖에 없는 미물이다. 그래서 모든 죽어가는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상징이다. 생명은 유한하며, 죽어가기에 연민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당시 핍박받는 조선 민중으로만 한정하면 시의 상상력과 참맛이 반감될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생명을 이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여기엔 시인의 숭고한 인간애와 생명존중의 정신이 담겨 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고자 하는 숭고한 치유의 정신이 숨어 있다. 

 

“사랑해야지”는 사랑에 대한 강한 의지다. 모든 죽어가는 존재들을 진한 결의로 생명(시인과 모든 죽어가는 것의 생명을 포괄한다)을 다할 때까지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가 아니라 “사랑해야지”다. 

 

이제 시인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소명을 받아들인다. 갈 길을 확실히 굳혔다. 이 길은 시인이 걸어가야 길, 우리가 걸어가야 할 결의(決意)의 길이다. 그 결의의 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하는 ‘숭고한 소명’을 실천하는 길이다. 시인이 그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한 데는 당시 핍박받는 조선 민중을 구제하고 독립을 위해 투신하고자 하는 결의에 찬 모습을 넘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생명과 삶에 대한 진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짐으로 확장하여야 할 것이다.

  

드디어 시인은 괴로움의 근원을 찾고 그 괴로움을 딛고 일어서 나아 갈 삶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결심이 섰다. 그래서 “휴우”하고 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본다. 그랬더니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절묘하다. 불과 한 행으로 된 이 제2연은 시의 모든 것을 살려낸다.

  

“오늘 밤에도”는 현실의 밤이다. 현재형으로 반복되는 힘든 현실이다. 그 현실은 밤과 같이 어둡고 우울하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길을 찾고 결심했으나, 그 오늘이란 밤에도 나의 소망이요 꿈이며, 나침반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여기서 “바람”은 앞의 바람과 달리 현실의 혹독한 시련이다. 그것은 일제의 혹독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확장하면 꿈을 향해 자기 길을 가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시련이 닥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삶의 길을 가고자 다짐하는 사람에게는 그 다짐만큼 시련도 크게 닥칠 것이다. 별(꿈과 소망)을 향해 걷는 길에 바람(시련)은 필수동반자이다. 그러니 그런 현실을 이겨내야지 그런 현실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시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술어인 ‘우러러’ ‘괴로워했다’ ‘노래하다’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스치운다’는 시의 흐름과 의미를 구체화하고 확장한다. 우러러보는 것은 소망이다. 절대자 즉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한 외경이며 순명이다. 괴로워하는 것은 그 절대 존재 아래서 부끄럼 없는 삶을 다짐하는 나이다. ‘괴로워했다’는 과거형이다. ‘노래하는 마음으로’이니 현재형임과 동시에 미래청구형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결심인 ‘사랑해야지’로 연결된다. ‘걸어가야겠다.’는 미래형으로 구도적 결심이다. 그리고 ‘스치운다“는 현재형이다. 시의 시간 흐름은 과거(괴로워했다)-미래(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현재(스치운다)로 연결된다. 이러한 시간적 흐름의 설정은 절묘하게 삶의 고뇌와 결심을 배가시킨다. 시인의 고뇌와 소망과 결의가 자기의 내면으로부터 온 우주에 이르기까지 시공에 녹아 있으며, 그 대상들에게 맹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감상한 《서시(序詩)》는 교과서적으로는 일제에 저항하는 자의 고뇌와 다짐을 담은 성찰과 고백의 시로 해석되었지만, 시가 갖는 본질과 깊이와 넓이는 그런 차원을 완전히 넘어선다. 시대와 정치, 이념과 종파를 떠나 부끄럼 없는 삶을 향한 고뇌와 생명 사랑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읊은 소명(召命)의 시라 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며 현실을 본다. 여전히 돈과 권력에 취해 이성과 양심을 팽개치는 패거리 정치와 팬덤 현상이 넘쳐난다. 어떤 이는 권력을 가지기 전에 한 말과 권력을 가진 후에 하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 어떤 이는 권력을 위해 영혼을 힘센 자들에게 저당 잡힌다. 정의와 양심을 스스로 농락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끄럼을 모르고 양심을 팔아 취한 권력과 부는 한동안은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람들(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직과 정치인은 업무를 시작할 때마다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집단 낭송하는 것을 법으로 정하자고 제안하고 싶어진다.

 

인류의 스승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는 이 세상에 우리를 파괴하는 ‘7가지 큰 죄’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것은 ① 일하지 않고 얻는 재산(부), ② 양심이 결여된 쾌락 ③ 성품이 결여된 지식 ④ 도덕이 결여된 사업 ⑤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⑥ 희생이 없는 종교 ⑦ 원칙이 없는 정치 등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간디가 지적하는 이 7가지가 모두 사회적 혹은 정치적 형상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특기할 사실은 이 ‘7가지 큰 죄’의 교정 수단으로 간디가 든 것은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같이 자연법칙과 원칙에 기초한 객관적 기준이나 사실 들이라는 점이다.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박창규 옮김, 『원칙 중심의 리더십』 김영사, 2000. 130쪽〜140쪽). 양심이 마비된 세상은 자연법칙과 원칙, 객관적 기준이 마비된 세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나도 죽는 날까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부끄럼 없기를 다짐해 본다. 그런 삶에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듯 시련이 닥치리라. 그래도 우린 변명, 공격, 회피, 비난, 편 가르기, 구차한 타협을 버리고 ‘눈물’ ‘사과’ ‘용서’ 그리고 ‘인내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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