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북치는 소년》들의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이제 그만

이상호 | 입력 : 2021/02/02 [09:07]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대표] 5년 전 『절름발이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도널드 트럼프 지음, 김태훈 옮김, 이레미디어)을 치유하겠다고 불쑥 나타난 대통령 후보자는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미국을 위대한 나라라는 명제, 자유와 비자유 세계의 리더라는 명제’로 회복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때 난 트럼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그의 책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과 위의 책 두 권을 읽었다. 

 

『거래의 기술』은 도널드 트럼프를 유명인으로 만든 장사기술을 담은 고전이었다. 『절름발이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은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쓴 책으로 그의 정치적 아젠다 17항목에 대한 거친 설명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트럼프에 대하여 기대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16권이 넘는 책을 써냈고 그 책들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던 저술가 트럼프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과연 그의 주장을 미국인들은 얼마나 믿어주었을까? 미국인들은 곡예사가 줄을 타듯 하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트럼프의 취임식은 지지자들의 열광과 반대자들의 시위 속에서도 성대하게 치러줬다. 이날 트럼프는 성경에 손을 얹고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엄숙하게 선서했다. 그리고 무도회를 펼쳤다. 트럼프의 취임식은 갑부답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화려했다. 세계는 기대와 우려 속에 이를 지켜보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출발부터 좌충우돌이었으며 미국인들을 둘로 갈라놓기 시작했다. 특히 멕시코 장벽은 많은 난관을 겪으며 강행하기도 했다. 모든 일이 거래하는 것 같았다. 달면 받아들이고 쓰면 배척했다. 트럼프는 외교에서도 좌충우돌하였으며, 유럽 우방과의 관계도 흔들리게 했다. 미국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국가로 만들어 갔다. 

 

그런 트럼프에게서 특히 주목할 것은 북미회담이었다. 초기에는 못 잡아먹어 한 맺힌 것처럼 헐뜯던 관계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김정은을 “내 친구”라며 치켜세우고 판문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는 회담 중간에 돌연 귀국해 버렸다. 그리고 퇴임 때까지 북미회담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화려했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은 한갓 쇼에 불과했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지자 온갖 의혹으로 지저분을 떨다가 퇴임했다. 2021년 1월 20일(미국 현지 시각) 20분가량의 동영상 퇴임 연설에서 대부분을 재임 기간의 치적을 자랑하는데 할애했다. 그러나 퇴임하자마자 곳곳에서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화려한 취임과 자기 자랑의 연기자는 떠났다. 트럼프의 화려함에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1960년대 말 물밀 듯이 밀려오는 서구 문명과 개발, 난무하는 정치 구호를 보고 서민에게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꼬집었던 김종삼의 시 《북치는 소년》을 다시 읽는다. 

 

북치는 소년

 

- 김종삼(1921〜1984)-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이문재 엮음『김종삼 시선』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4-

 

시는 3연으로 이루어졌다. 평면적인 것 같지만 상당한 입체성을 내재하고 있다. 시는 김종삼의 다른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결정적 순간’ ‘결정적 장면’을 한마디 툭 던져놓은 것 같지만, 이면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가 있는 공간은 눈 오는 풍경이다. 시기적으로는 눈 오는 크리스마스 무렵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눈 오는 날,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아왔다. 카드에는 ‘북치는 소년’과 ‘등성이에 진눈깨비가 내리는데 햇빛에 반짝이는 양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원의 목가적인 모습이 배경이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엔 아름답고 가슴 설레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시는 제1연에서 대뜸 그 아름다움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이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이 시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꼬집으며, 내용 있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것들이 시인에게 내용 없는 아름다움으로 비치는 사연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2연의 “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에서 알 수 있다. 상상해 보자. 눈 오는 날, 가난한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아왔다. 카드에는 당시 서양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북치는 소년》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 화려한 모습의 서양 나라를 가본 적이 없다. 그 화려한 모습의 《북치는 소년》은 동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딴 세상의 아이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그 카드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일 뿐이다. 

 

시의 주제는 제3연의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에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더욱 구체화한다. 그 상황을 상상해 보자. 겨울날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등성이에 내린 진눈깨비는 내리면서 녹고 있었다. 몇 발짝 떨어져서 보니 진눈깨비 내린 어린 양의 등성이가 옅은 겨울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등성이의 진눈깨비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어린 양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다. 

 

이 시는 김종삼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처럼”으로 끝나는 3개의 연에서 그 비교 대상이 생략되어 완전한 문장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쓰다가 만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시인의 시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처럼”의 끝에 제목인 “북치는 소년”을 덧붙여 보자. 그러면 의미는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 감상해 본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북치는 소년, “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북치는 소년,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 북치는 소년. 이렇게 읽고 나니 맛이 달라진다. 시의 속살에 상당히 많은 말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이 시에서 “처럼”은 시를 살려내는 중요한 어구이다. 그리고 이 시의 소재인 ‘북치는 소년’ ‘양 떼’ ‘진눈깨비’는 그 시절엔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다. 그렇기에 시인에게는 낯선 아름다움이며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다. 

 

이 시는 원래 김종삼의 시집 『십이음계』, 1969, 삼애사)에 실린 것이라고 전한다. 김종삼의 시에는 아이가 가끔 등장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아이는 가난하고 상처받은 아이의 모습이 많다. 6.25 전쟁과 가난, 이 땅에 버려진 수많은 전쟁고아는 그에게 아픔의 존재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또한 넉넉하지 못했으며 평생을 그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술로 살았다. 

 

다시 그 시대로 되돌아가 보자. 6.25 전쟁이 끝나고, 파괴와 굶주림의 아비규환 속에서 4.19가 일어났고 5.16이 일어났다.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장밋빛 미래를 내세우며 국민을 현혹하지만, 사람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서양 문물은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아프게도 한다. 서양 나라는 잘사는 나라, 귀족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우리와는 거리가 먼 동화 속 나라이다. 그런 환경에서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장밋빛 구호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다. 

 

다시 시로 돌아가 시의 중심의미를 이루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과 “북치는 소년”을 살펴보자.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하게 보면 겉은 화려하고 속은 형편없는 것, 말은 청산유수지만 알맹이 없는 공허한 말, 시작은 화려하지만, 끝은 알 수 없는 것, 선언은 멋지지만, 결과는 초라한 것 등 다양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면 실존 없는 존재성을 꼬집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선 실존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실존이란 철학적 사유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말하는 것만큼 거기 그렇게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겉과 내용이 함께 존재하며, 현 존재의 실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과 행동의 일치, 사상과 삶의 일치를 향해 노력할 때 실존은 더욱 빛난다. 그러나 세상은 허위의식으로 가득하다. 허위의식으로 물든 세상에선 진정한 실존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실존 없는 세상을 꼬집는다고 하겠다.

  

나는 얼마 전에 헌 집을 사서 수리를 한 후 이사를 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아파트의 일층 집이 나와서 사기로 했다. 그 집은 주인이 월세를 놓고 있었다. 사전에 집을 보기 위해 부동산중개인의 안내를 받으며 갔더니 집안은 완전히 쓰레기장이었다. 온전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방안에는 명품 옷들과 골프채가 가득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그분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입자는 이혼녀로 딸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아마 그녀는 밖에서 생활할 때는 명품 옷과 골프채로 화려하였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이사를 한 후 1년 가까이 주민등록도 옮기지 않았고 자동차세 체납고지서가 계속 날아왔다. 밖에서 본 그녀의 아름다움은 전혀 내용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삶에서 부표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허위의식 속의 존재 같은 삶을 떠 올렸다. 밖에서의 화려함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일 뿐이다. 

 

인간은 실존을 깨닫고 실존의 상황을 가질 때 비로소 안정된 생활과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실존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과 불합리와 부정도 있지만, 내부의 불합리와 부정도 존재한다. 특히 내부의 불합리와 부정은 자신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실존을 흔들게 된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살아 있지만 사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에는 실존 문제가 도사린다. 이 말을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로 바꾸면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이리라. 그것은 삶에서 주어지는 내용 있는 아름다움이리라. 그러나 위의 말에는 살아 있지만, 존재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의 삶이란 의미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실존을 흔드는 것 중 하나는 계층 간의 위화감과 그로 인해 다가오는 패배감과 고독감이다. 빈부의 격차가 지나치게 심하면 하층민들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기 쉽다. 그래서 세상을 한탄하고 불만 가득하게 지내다가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삶과 인간관계 그리고 욕망 좌절과 실패는 고독을 심화시키고 실존 의식을 극도로 떨어뜨린다. 그것이 지나치면 삶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화려한 구호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일 뿐이다. 

 

시에서 말하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오늘의 정치 사회적인 여러 상황에 비추어 보면 씁쓸해진다. 정치인들이 출마할 때 공약(公約)은 참으로 화려하다. 그러나 그 공약(公約)은 상당수가 공약(空約)이 된다. 트럼프의 화려한 취임은 분열된 미국과 초라한 퇴임을 불러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취임식 때 화려한 한복차림으로 등장하여 통일 대박을 꿈꾸며 잘 가는 것 같았으나 국정농단으로 초라하게 끝이 났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20차례를 훌쩍 넘긴 부동산 대책과 정부 여당의 밀어붙이기식의 부동산 3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은 잡히지 않고 전국의 집값은 들썩이고 있다. 화려한 대책 뒤에 있는 그늘이 너무도 크게 드리워지는 것 같다. 돈 없고 집 없는 서민들에겐 내용 없는 아름다움(대책)일 것이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부르짖으며 1997년부터 부모의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시작하여 스스로 남윤인순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성 운동의 대모(大母)로 이름을 날렸던 국회 남인순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사건 때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여 여론의 몰매를 맞자 사과를 했지만 시원하지 않다. 그녀의 과거 화려했던 빛의 그늘은 지금 너무도 크게 보인다. 진심 없는 사과는 용서와 화해는커녕 의혹과 분노를 증대시킬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자들의 말들이 회자 되었다. 한 후보가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에 가서 녹물 나오는 불편함 등 주거 문제와 집값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자 다른 한 후보는 “23억짜리 녹물 말고 23만 반지하 눈물 보라”고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모두 아름다운 말들에 지나지 않을 공산은 크다. 23만 반지하의 눈물은 그들에게 집과 일터를 모두 제공하지 않는 한 그림의 떡일 수 있다. 그것은 서민을 위한다고 분양한 동탄 신도시 행복 주택에 입주하여 보니 임대료와 관리비가 너무 비싸서 살기 어렵다고 하는 것과 같다. 역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옛말에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과 같이 겉으로는 화려하게 미화되지만, 뒷모습은 어딘가 초라하게 보인다. 정치인과 정치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의 본태성이 자기 자랑이지만 면밀하게 따지고 보면 자랑만큼이나 숨겨진 그늘도 많은 것 같다. 

 

그러면 “북치는 소년”은 누구를 의미할까? 우린 그것을 현실적으로 모든 대상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도 국민이 보기엔 《북치는 소년》이 될 수 있고, 지금 서울을 구하겠다고 나온 서울시장 후보들 모두 《북치는 소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정의를 부르짖고 인권을 내세우던 운동가들도 《북치는 소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국민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북치는 소년》은 역시 아직도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국땅에서 북만 치고 있는지 모른다.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말과 행동, 실사구시의 세상이 아쉽다. 

 

시는 전체적으로 고도의 비약적인 어구를 연결하여 《북치는 소년》이 내는 북소리의 음향 효과처럼 이면에 숨겨진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꼬집는다. 시를 이렇게 음향 효과 처리하듯 한 것은 아마 평생 음악을 사랑하였던 김종삼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시는 결국, 이 사회에 만연하는 허위의식과 허풍, 나아가 정치 사회적으로 전개되는 엄청난 위선과 자기기만을 꼬집으며 실사구시의 세상, 진심이 깃든 세상을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린 지금 수많은 《북치는 소년》들의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질려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용 있는 아름다움을 갈구한다. 진심이 깃든 말과 행동을 원한다. 입으로만 외치는 정의와 공정이 아니라 실제 모든 영역에서 정의와 공정이 살아 숨쉬길 바란다. 실사구시의 정치가 기다려진다. 실사구시의 세상이 오길 바란다. 화려한 구호가 아닌 진정으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북소리를 듣고 싶다. 이 땅의 많은 《북치는 소년》들에게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북치는 소년》들이 북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데만 몰두하면 그 소리에 질리고 그 그늘에 가려져 허탈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게 되어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국민도 이제는 내용 없이 북만 치는 《북치는 소년》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우린 관객이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봐야 하고, 배우가 아니라 관객도 되어봐야 한다. 나만의 눈이 아닌 너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도 알아야 한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