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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모든 이에게 출산이 《선물 받은 날》로 될 수 있다면?

이상호 | 입력 : 2021/03/24 [09:18]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가 3만5,000명 감소했다. 2021년 2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출생아 수는 사망자보다 3만3,000명 적었다. 합계 출산율도 0.84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거기다가 코로나 감염증 등의 여파로 혼인까지 줄어 인구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이 가파른 ‘수축사회’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혼인과 출산율 저하는 위기 사회로 진입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출산율이 1.00% 이하로 떨어지면 위기가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해 왔다. 그런데 그 위기가 우리나라에 급속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지는데 미혼모의 출산과 출산한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버리거나 학대하는 준비되지 않은 엄마들이 늘어난다는 것도 큰 사회문제이자, 인간존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여성의 자녀 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정부가 낙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가고 있다. 일부 여성계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나 종교계,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의사 단체 등은 낙태 허용 기준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이 출산율 저하와 생명 경시 풍조의 만연 등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사유리가 남편 없이 출산하고 자발적 비혼모 선언을 하여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혼인은 하지 않고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여 아이를 낳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는 출산율이 극도로 저하되는 시점에서 법률적으로나 관습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한국도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만 13세 이상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통계청의 2020 사회조사에 의하면, 결혼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응답이 30.7%였다. 이 비율은 2016년에는 24.2%, 2018년에는 30.3%, 2020년 30.7%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비혼모에 대한 정책적 변화가 필요할 때가 되었다는 징후다. 

 

이런 일련의 사회현상을 보면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출산이 축복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유안진은 그녀의 시 《선물 받은 날》에서 아기를 위대한 선물이라고 하였는데 말이다.

 


선물 받은 날 

- -유안진(1941〜 )-

 

춘삼월 초아흐레 

볕 밝은 대낮에 

홀연히 내게 

한 천사를 보내셨다 

 

청 드린 적 없음에도 

하늘은 

곱고 앙징스런 

아기천사 하나를 

 

탐낸 적 없음에도 

그저 선물로 주시며 

이제 

너는 어머니라 

 

세상에서 제일로 

복된 이름도 

함께 얹어주셨다. 

 

- 나민애 지음, 김승진 그림 『내게로 온 시를 너에게 보낸다』 밥 북, 2019- 

 

한 폭의 풍경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옛날 고즈넉한 시골에서 명절날 소녀가 아버지나 엄마로부터 선물을 받고 좋아서 춤추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달밤에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 놓고 지성을 드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 소식을 접하면서 3월에 이 시를 여러 번 읽었다. 봄볕이 따뜻한 날 창가에 앉아서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내가 첫 아기를 가졌을 때의 기분을 곱씹었다. 그때는 정말 ‘아, 드디어 나도 아빠가 되는구나’ 하는 들뜬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 시는 모든 여자를 위한 시라기보다는 모든 남자를 위한 시라는 생각을 했다. 

 

시의 첫 연에서 엄마가 아기를 낳은 날은 “춘삼월 초아흐레” 즉 3월 9일이다. 그날은 유난히 봄볕이 밝고 따뜻했다. 밝고 따뜻한 봄볕은 축복의 햇살이었다. 그 봄볕의 축복을 받으며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아기를 낳았다고 하지 않고 천사를 보내셨다고 했다. 자기가 낳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춘삼월 초아흐레’는 시인이 아기를 낳은 날이지만 출산의 축복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날이다. 

 

제2연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하늘의 축복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기를 갖기 위해 하늘에 “청 드린 적 없음에도/하늘은/곱고 앙징스런/아기천사 하나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하늘이 무상으로 준 선물이다. 이 구절의 이면에는 아기를 선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곱고 착한 여성의 숭고한 이미지가 숨어있다. 

 

제3연에서 아기를 가짐으로 여자는 ‘어머니’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하였음을 말해준다. “탐낸 적 없음에도/그저 선물로 주시며/이제 /너는 어머니라” 탐낸 적 없음은 남의 아기를 시기하거나 질투한 적이 없음을, 엉뚱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음을, 지극히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음을 말해 준다. 여성은 세상에서 두 번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하나는 여성으로의 탄생이며 또 다른 탄생은 어머니로서의 탄생이다. 둘 다 생물학적인 요소가 개입된 것이지만 어머니로서의 탄생은 숭고함으로 나아가는 탄생이다. “천지간 모든 동물에 있어서 개로부터 인간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은 숭고한 것이다”고 한 알렉산드로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 소설, 『몬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의 말은 모든 여성은 어머니로 탄생 될 때 비로소 숭고함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어머니들로 인해 인류는 발전하고 진화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제5연에서 하늘은 출산한 시인에게 어머니라는 이름만 주신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로/복된 이름도/함께 얹어주셨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태어난 아기의 이름도 주셨다. 이는 어머니로서의 숭고한 탄생의 절정을 이룬다. 어머니는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 명명될 때 그 어머니라는 명명도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즉 탄생한 아기의 이름이 얹어질 때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존재가치가 있으며 어머니의 삶과 행동이 시작된다. 이제 여자의 삶은 이전의 삶과 어머니가 된 이후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시를 어머니를 위한 시라고만 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위한 시일 수도 있다. 남자는 혼인하여 아내가 출산함으로 비로소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남자는 아내가 어머니 됨을 통해서만 아버지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숭고함의 선행 조건이며 아버지는 어머니라는 숭고한 이름에 얹어진 존재이다. 남자도 비로소 아버지가 됨으로써 숭고한 사명을 깨닫고 인생이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거듭나야 한다. 

 

여자와 남자라는 이름보다 어머니와 아버지란 이름이 더욱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것에 깃든 사명감과 희생 때문이다. 만약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사명감과 희생을 깨닫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영역을 스스로 이탈한 탕아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이름에 맞는 사명을 깨닫고 그에 맞는 행동과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신의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상업주의가 발달한 요즈음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머니와 아버지란 말이 여자와 남자라는 말보다 숭고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은 그 말이 지닌 믿음성과 내면에 함축된 행동의 절제성 때문이기도 하다. 여자와 남자는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개념이다. 여자와 남자는 인간의 성별 기능으로 규정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고귀한 사회적 틀 안의 존재로서 규정된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자기 행동에 대한 모범과 규제가 덜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자녀에게 모범과 믿음을 주는 존재로서 자기 행동에 대한 절제를 통해 사랑과 희생을 실천해 가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삶에서 희생과 절제가 실천될 때 더욱 숭고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바로 그 희생과 절제를 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남편까지 내가 알고 있는 한 여선생이 교장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스스로 쥐어박으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제가 미친 것 같아요” “왜 그래요” “제가 이 나이에 아이를 가졌어요” 그녀는 당시 나이가 49세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이 축복의 선물을 주셨네요.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에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아이가 생겼으니 그것은 축복이지요.” 사실 그녀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 여선생의 아이 둘은 이미 커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늦둥이를 가진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진 것을 4개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나는 '입덧을 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기 위해 아이를 가진 것을 숨긴 것'이라면서 위로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키울 날이 캄캄하다'며 난감해한다고 하지만, 두 아이는 자기들이 키운다며 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여선생은 아들을 낳아 잘 키우고 있었다. 좀 힘들지만 키우는 재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누나와 형이 잘 돌봐준다고 했다. 나는 그 늦둥이가 분명 집안의 보물이 될 것이라며 애국자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많은 여자와 남자들이 출산을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위기상황이다. 그동안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의 변화를 보면 이를 반영한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출생아 수(합계 출산율) 변화를 보면, 2015년 43만 8,400명(1.24%), 2016년 40만 6,200명(1.17%), 2017년 35만 7,800명(1.05%), 2018년 32만 6,800명(0.98%, 2019년 30만 2,700명(0.92%) 2020년 27만 2,400명(0.84%)로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거기다가 2020년 혼인 건수 역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안 그래도 혼인이 줄어들고 비혼자가 늘어나는데 코로나 19로 인한 혼인 연기도 한 몫 했다. 이러한 혼인 건수는 2015년 이후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역시 2020년 통게청 자료에 의하면, 2015년 30만 2,828건이던 혼인 건수는 2016년 28만 1,635건, 2017년 26만 4,485건, 2018년 25년 7,622건, 2019년 23만 9,159건, 2020년 21만 3,502건으로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가히 심각한 수준이며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그만큼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혼인이 줄어들면 출산도 줄어든다. 혼인을 해도 출산하지 않는 부부도 늘고 있다. 비혼 인구의 증가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한다. 당장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출산인구의 감소는 노령인구의 상대적 증가를 가져온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직간접으로 감당해야 할 노인이 늘어난다는 것이며 심각한 미래 재정과 사회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는 심각한 사회 양극화와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 줄어드는 학령아동으로 인해 문 닫는 학교들이 늘어나며 문 닫는 대학도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는 남아도는 시설 활용 문제도 있지만 심각한 고용 문제도 야기된다. 학생이 없어 남아도는 교사들과 대학교수 및 교직원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 그것은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며 농촌 붕괴를 넘어 중소도시의 공동화 현상까지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심각한 인재 결핍 현상까지 초래할 수 있다. 국가와 기업에 필요한 인재의 부족으로 국가와 기업은 다운사이징을 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을 겪을 수 있으며, 기업은 인재를 찾아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 기업의 심각한 해외 유출은 고용과 국가 재정의 축소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을 정치권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들은 왜 혼인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을까? 다양한 진단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혼인과 출산에 대한 심리적 요인과 정치․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본다. 우선은 혼인이 성인으로 살아가는 필수조건이 아니라 선택 조건이며 삶의 완성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방해물로 여기는 경향도 크다는 점이다. 여기에 정치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없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출산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자녀는 혼인한 부부의 선험적인 가치가 아니라 선택적인 도구적 가치가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각박한 사회현상이 크게 작용했다. 결혼과 자녀 출산 기피에는 자녀에 대한 가치(정신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의 하락, 가정과 자녀에 대한 자기 효능감의 저하, 양육 과정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스트레스(양육 휴식, 양육비, 과도한 사교육비, 어린이집, 유치원 문제 등 복합적), 낮아지는 결혼 만족도, 부부 갈등의 증대, 결혼 연령의 증가, 특히 치솟는 집값과 불안한 고용상태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고 지원해야 할 문제다. 지금 한국에서 결혼과 출산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중대 문제이기 때문이다. 

 

출산 기피의 문제는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와 이를 부채질한 매스컴의 영향도 크게 작용해 왔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각종 매체는 출산을 축복이 아니라 고통으로 규정지으며 다루어 왔다. 고통을 기피하고 자유와 욕망을 바라는 심리와 사회 인식은 출산을 기피하게 했다. 거기다가 개인주의적 경향과 왜곡된 자아실현의 욕망은 출산과 육아가 자기 성장의 방해가 되는 고통으로 인식하게 했다. 물론 자기 성장의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고통 없이 얻어지는 진정한 축복과 희열이 없으며, 고통 없이 찾아오는 발전도 없다. 

 

여기에 문명화가 가져다준 극도의 편리함의 추구와 고통의 기피 현상, 나아가 왜곡된 미의 추구도 한 몫했다. 세상은 문명의 혜택으로 한없이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한 경향은 힘든 일, 고통스러운 일, 특히 신체적인 고통을 멀리하는 풍조를 낳았다. 그리고 왜곡된 미의 추구는 출산이 나의 몸을 망가뜨리고 아름다움을 해치는 일로 받아들여지게 했다. 이러한 풍조는 출산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으로 인식하게 했다. 그러나 축복이 깃든 모든 일은 고통을 수반하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적인 아름다움만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과 스스로 가꾸어 가는 열정에 있음을 우린 잊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출산은 정말 고통인가? 고통을 수반한 숭고한 축복인가는 각자의 인식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 할 문제가 된 것 같다. 

 

성경에 이르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1장 28절)”고 했다. 생육하는 일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생육이 없이는 번성할 수 없으며 땅에 충만할 수도 없다. 여기서 생육은 낳고 기르는 것이다. 즉 출산하여 올바르게 길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생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망한 나라, 무너진 왕조도 수없이 많았다. 

 

출산은 자연의 섭리이면서 문명 발전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명화는 출산 기피의 풍조를 낳았다. 그리고 극도의 출산 기피의 풍토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유안진의 시 《선물 받은 날》을 읽으며 모든 젊은 남녀들이 출산을 “선물”로 여기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유안진 시인의 수필 <선물을 안고>에 나오는 구절을 함께 읽어 본다. 

 

“외롭고 쓸쓸할 때는/꼬마 딸을 껴안는다/내 작은 가슴에/꼭 맞는 꼬마 몸집/아가야/나는 누구지?/우리 엄마/너는 누구고?/엄마 딸/오오 하나님/고맙습니다/때 묻고 주름진 얼굴을/고운 뺨에 비비면/한줄기 눈물로 찾아오는 감사/허전하고 서러워지는 때/너를 품어 안으면/빈 가슴 가득히 메워 주는/꼬마야 내 딸아/여리고 보드라운 네 두 팔로/내 목을 안아 주렴/어리석은 네 엄마가/슬프도록 행복해지게/너처럼 소중한 선물을/나에게 주셨구나.//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 이리도 감사하온지요”(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서정시학, 19쪽〜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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