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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아기 구름의 눈물》 엄마들에게, 아기들에게

이상호 | 입력 : 2021/04/13 [09:45]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 경실련 대표] 세상의 모든 엄마는 ‘엄마’라는 숭고한 말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한. 여성성을 초월한 사람들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엄마는 아이들의 무의식 저변에서부터 이어진 가장 강한 생명의 젖줄이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도 엄마에게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어도 엄마 잃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 

 

[행복나눔 충남 교육(2021.1.1.)]을 읽다가 눈과 마음이 멈춘 곳이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아이의 천진한 소망과 세상을 마음대로 읽어갔다. 내 눈과 마음이 멈춘 곳은 박소연 어린이의 시 《아기 구름의 눈물》이었다. 시를 읽으며 ‘아, 그렇구나’ 했다. 

 

아기 구름의 눈물

 

- 박소연-

 

엄마 구름 잃은 아기 구름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아기 구름의 눈물이

주변 자동차 

사람이 쓴 우산 

나무와 꽃에 쏟아졌다. 

모두 모두 

아기 구름의 눈물 때문에 

깨끗해졌다. 

모두 모두 

아기 구름의 눈물 때문에 

살아났다. 

 

엄마 구름을 만난 아기 구름 

엄마 구름과 함께 집에 가는 길 

 

햇빛이 반짝 세상을 비춘다 

 

어서 집에 가자, 아기 구름아!”

 

- 충남교육신문 2021.1.1.-

 

시가 잘되고 못되고는 두 번째 문제다. 나는 유명한 시인의 시, 잘 쓴 시만 읽는 것을 반대한다. 사람들이 시를 읽으며 순수한 마음을 읽고 세상을 보며 내일을 꿈꾸면 좋겠다. 

 

자연 현상과 동심이 만났다. 비는 엄마 구름을 잃은 아기 구름의 눈물이다.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다. 아기 구름의 슬픈 눈물이 되레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생명을 살렸다. 세상의 모든 눈물은 슬픔만은 아니다. 슬픈 눈물일수록 세상을 정화하고 생명력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눈물은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물방울이다. 엄마를 잃은 아기는 눈물에 젖을 수밖에 없다. 엄마 잃은 아기 눈물은 어른의 눈물보다 세상을 더 아프게 하고 더 깊은 사랑을 쏟아내게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이의 소망은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이다. 엄마도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집에 가는 것이다. 그것은 태초부터 신이 준 가장 강한 인연의 끈이다. 아기 구름은 한바탕 눈물을 쏟아 내고서야 잃었던 엄마 구름을 만났다. 나들이를 나갔거나, 학교에서 돌아왔거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아기는 불안하다. 자연스럽게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엄마는 아기에게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이다. 아기는 엄마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찾았으니 얼마나 좋은가? 엄마와 함께 집에 가니 얼마나 기쁜가? “엄마 구름과 함께 집에 가는 길”에 “햇빛이 반짝 세상을 비춘다.” 비 온 뒤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세상은 찬란하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는 아기 마음도 찬란해진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서 집에 가자, 아기 구름아!” “어서 집에 가자, 나의 사랑하는 아가야!” 아기는 신이 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아기에게 엄마는 가장 신나는 존재이다. 그래서 엄마는 늘 아기와 함께해야 한다. 

 

아기는 ‘엄마’라는 토양에 뿌린 내린 꽃이다. 엄마는 아기의 성장 영양소의 근원이다. 그래서 엄마 없는 아기는 뿌리내릴 토양을 잃은 꽃과 같다. 그런 꽃은 시들 수밖에 없다. 아기에게 엄마는 가장 강한 애착 대상이다. 이 애착 관계가 깨어질 때 아기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아기의 모든 인격과 성장 잠재력과 좌절을 이기는 힘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영양을 먹고 자라난다. 그래서 그것이 결핍된 아기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명의 시대를 살면서 ‘엄마’라는 말의 숭고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소리가 자주 들려 마음 아프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019년에도 학대 피해로 사망한 아동이 42명이나 된다. 해가 갈수록 증가한다. 드디어 아동학대방지법까지 만들었다. 아기를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엄마는 엄마도 여성도 아니다. 다만 자기보존 본능과 자기 쾌락의 욕구만 가진 동물일 수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자기발전 및 경제활동으로 워킹맘이 늘고 있다. 많은 워킹맘의 가장 큰 숙제는 육아이다. 그들은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이가 엄마를 잃게 하는 아픔을 수없이 경험해야 한다. 그것은 엄마들의 노력보다 국가의 몫이지만 해결의 길은 묘연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육아의 어려움은 출산을 기피하게 했다. 그것은 미래의 재앙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시를 읽으며 이렇게 소망했다. 세상의 모든 여성이 모성의 숭고함만은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워킹 맘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의 손을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점점 늘어가는 워킹 맘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참 좋겠다. 그래서 늘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에 갈 수 있는 “엄마”라는 햇빛이 반짝 비추는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세상의 엄마들에게 힘들어도 아가의 손을 놓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엄마와 함께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결코 엄마의 손을 놓지 말라고 하고 싶다.

  

김남조 시인이 <그 먼 길의 길벗>에서 말했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 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 세상의 엄마들과 아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기에게 끝없이 그 전류를 보내 주세요. 결코, 정전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세요. 세상의 아기들이여, 엄마의 전류를 잘 받아 환하게 불을 밝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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