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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칼럼] 누가 감히 용서할 수 있는가?

이상호 | 입력 : 2021/10/23 [16:23]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가 아들 준이를 데리고 낯선 땅 밀양으로 가다가 시골 국도에서 차가 고장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카센타 사장 종찬(송강호)이 와서 차를 몰고 가는 것으로 영화 밀양(이창동 감독, 2007년 개봉, 160만 관객, 60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은 시작된다. 사고로 죽은 남편에게는 애인이 있었으나 신애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밀양에 정착한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개원한다. 실력이 부족하지만, 종찬이 서울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왔다고 떠들며 다니는 바람에 지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는다.

 

신애는 지역 유지 회장 집에 초대받아 피아노 연주를 하다가 실력이 짧아 곡을 소화하지 못해 끝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만, 카센터 사장 종찬은 39세 노총각으로 신애가 나타나자 갑자기 신애의 주변을 맴돌며 바빠진다. 신애 주변을 맴도는 종찬을 보고 사람들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신애가 밀양에서 서서히 안정을 찾고 안면을 넓혀가던 어느날 동내 아줌마들과 노래방에서 놀다가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아들 준이가 보이지 않는다. 허둥지둥하는데 아들 유괴범에게서 전화가 온다. 유괴범은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거액의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신애는 사실 돈이 없다.

 

밀양에 도착한 신애는 종찬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땅 있으면 소개해 달라.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보다 땅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등 떠들고 다녔다. 그런 신애의 모습은 누가 봐도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신애에게는 870만 원이 전부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자기표현이 서툰 아들을 웅변학원에 보냈는데 웅변학원 원장은 돈독이 오른 사람이었다. 그는 신애의 아들을 납치하고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신애는 납치범에게 가진 돈을 모두 주고 사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들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남편의 죽음에도 덤덤했던 신애는 오열한다. 신애는 가짜로 코를 고는 흉내를 내며 아빠를 그리워하던 아들처럼 아들이 생각나면 코를 골았다. 그래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고향이라지만 낯선 땅 밀양에서 아들까지 잃고 방황하던 신애에게 약국을 운영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집사가 다가갔다. 약국 집사는 신애 같은 사람이 안정을 얻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약국에서 파는 약이 아니라 주님이라며 주님을 만나야 한다고 권고한다. 신애는 처음에는 신의 세계, 영적인 세상을 극구 부인한다. 그러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가슴의 통증을 이기지 못하여 약국 주인이 소개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한다는 기도회에 나가서 오열한다. 그동안 가슴 깊이 저며있던 한과 응어리를 쏟아내고 거짓말처럼 평온해지며 교회에 나간다. 종찬도 덩달아 신애를 따라 교회를 나간다.

 

신애는 점점 교회에 몰입하게 되고 어느 순간 예수님의 깊은 사랑으로 아들을 죽인 웅변학원 원장을 용서하겠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신애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져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칭찬한다. 드디어 신애는 용기를 내어 교도소에 가서 아들을 죽인 원수를 면회한다. 신애는 사지가 떨리는 아픔을 참으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신애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밀며 고마워해야 할 당사자인 아들 살해범은 너무도 담담하게 이미 자기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신애 앞에서 그는 죄인 중의 죄인인 자기를 주님께서 용서해 주셔서 요즈음은 너무나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서 신애의 용서에 대한 고마움과 죄의식은 발견할 수 없었다.

 

신애는 다시 오열한다. 누가 감히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해야 할 자기를 팽개치고 자기의 분신이요 마지막 희망이었던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누가 감히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큰 상처를 안긴 자신에게는 일언반구의 사죄나 용서 구함도 없는 범인을 일방적으로 용서해 버렸다는 하나님이 그 흉악범에게 어떻게 천국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신애는 그동안 누구에게 단 한 번도 폭발하지 않았던 분노를 표출한다. 신을 부정하고 신에게 도전한다. 믿음을 그토록 강조하던 약국 장로를 유혹한다. 믿음도 여인의 몸 앞에서는 무너지고 약국 장로는 혼란에 빠진다. 교회연합집회에 나타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노래를 마구 틀어대어 혼란에 빠뜨린다. 자기를 위해 철야기도회를 한다고 모이는 집에 돌멩이를 던진다. 정말 하나님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라며 하나님에게 도전한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한다. 죽음이 엄습해 올 때 신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려달라고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간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은 후 차츰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한다. 스스로 머리를 자르며 평화를 찾아간다. 그리고 밀양(Secret Sunshine 한 줄의 햇살)이 비친다.

 

용서란, 아름다운 미덕임에도 때로는 용서 자체가 엄청난 분노를 유발한다. 그것은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의 아픔을 무시한 용서이기 때문이다. 신애를 오열하게 했던 것은 가장 큰 피해당사자인 자기와는 아무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고 천국의 차표까지 준 하나님과 가장 큰 아픔의 당사자인 자기에게는 눈꼽 만큼의 미안함도 없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너무도 평온한 아들 살인범의 태도였다.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질러 자격을 상실한 국가 유공자들이 뉘우침 심의를 거쳐 국가 유공자 지위를 회복한 일이 각종 매체에 보도되어 시끄럽다(news1 ). 102일 국회 송재호 의원이 국가 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국가 유공자 31명이 상실한 자격을 이 심의를 통해 국가 유공자 지위를 회복했다고 한다. 이들은 강간추행 혐의 6, 강도 혐의 7, 살인 혐의 2명 등 총 31명으로, 상당수가 강력 범죄를 저질렀다.

 

국가 보훈처는 실형 선고에 따라 자격 박탈된 유공자라도 재범 여부, 봉사활동 여부 등 행적을 고려하여 뉘우침 심의를 통해 자격 복권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보훈처는 내부 지침이라는 이유로 배점과 평가 기준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 유공자가 징역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아 자격 박탈된 사례가 202191건으로, 2020년 대비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별로 보면 강간추행 24, 강도 25, 특정범죄 가중처벌 15, 살인(미수 포함) 12명 등이며 이중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성범죄강도살인 등도 총 62건으로 전년 대비 280%나 급증했다. 이들이 급증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 조사를 한 송재호 의원은 국가 유공자는 타인의 모범이 될 수 있게 품위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들이 범죄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고 자격이 박탈되는 순간 국가 유공자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격은 영구히 박탈된 것이라고 하며 뉘우침 심의는 매우 부적절한 제도로,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여전히 상처를 딛고 일어서질 못하는데 그 뉘우침 심의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객관적이고 인간적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영화 밀양에서의 살해범에게 하나님이 천국의 티켓을 준 것처럼 국가 보훈처는 국가 유공자의 모든 지위를 회복시켜 줄 수 있단 말인가? 거기까지 용서해 줘도 된단 말인가? 평생을 공직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이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 연금이 박탈되거나 삭감된다.

 

그 국가유공자라는 사람들은 어떤 유공을 가졌기에 중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뉘우침 심의라는 것을 통해 모두를 용서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잘못되었고 불공평하며 정의롭지 못하다. 아무리 국가 유공자라지만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국가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 사람이 된다. 이 제도를 계속 존속시키는 한 수많은 피해자들은 밀양의 신애처럼 오열할 것이며 국가 유공자들의 강력 범죄는 늘어날 것이다. 누가 감히 함부로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는 미덕이지만 그 방법과 한계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정의가 바로 선다. 그래야 피해 당사자에게 이중의 상처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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