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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권종 칼럼 ] 다시 대한민국(大韓民國)!

윤권종 | 입력 : 2021/11/02 [17:27]

 

▲ 전) 선문대학교 교수=윤권종     ©뉴스파고

 

[윤권종 박사=前) 선문대학교 교수/뉴스파고 논설위원] 1897년 10월 12일 조선(朝鮮)은 국명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정하고 황제국(皇帝國)을 선포하였다. 한(韓)은 본디 원삼국시대의 삼한(三韓)을 지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후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의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므로 통칭하여 삼한(三韓)이라 하였다. 통일국가를 자칭하는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는 삼한일통(三韓一統), 조일삼한(肇一三韓)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였다. 왕은 독립국을 의미하는 황제의 황룡포(黃龍袍)를 입고 새로 지은 환구단(圜丘壇)에서 즉위하였다. 나라 이름은 ‘대한(大韓)’이고, 황제가 주인으로‘제국(帝國)’이라 하여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국명으로 하였으며, 약칭으로 ‘대한(大韓)’과 ‘한국(韓國)’을 사용하였다.

 

광무 원년(1897년) 고종태황제실록(高宗實錄) 36권에는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삼한(三韓)’은 ‘삼한일통국(三韓一統國)’에서 ‘한국(韓國)’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대(大)는 ‘대청제국(大淸帝國)’, ‘대명국(大明國)’등 당시 중국왕조들이 관용적으로 쓰던 접사로 ‘대한국(大韓國)’은 위대한 한(韓)의 나라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구한말(舊韓末)’은 ‘구한(舊韓)’ 또는 ‘구한국(舊韓國)’에서 유래하였다. 이런 연유로 혹자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구한국(舊韓國)’으로,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신한국(新韓國)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韓)’은 우리에게 있어서 글과 음(音)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을 이르는 ‘한양’, 서울을 흐르는 강 ‘한강’, 백제의 수도 ‘한성’, 발해의 중요한 수도 ‘홀한성’, 우리의 문자 ‘한글’등에서 언어학자들은 한(韓)을 하나(一), 크다(大), 길다(長), 넓다(廣), 진리(眞理), 왕(王), 추장(酋長), 알맹이(丸) 등이 있는데, 이것을 한자로 표현할 경우 韓, 漢, 丸, 汗, 瀚, 幹 可汗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han, khan, kan, gan 등의 몽골어와 투르크어, 퉁그스어 등의 알타이어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뜻은 특히 임금을 뜻하거나 나라를 표현하였다. 신라의 ‘거서간’, ‘마립간’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관등 고추가(古鄒加)에서 고추(khok hoch)는 높다 또는 하늘을 뜻하는 으뜸 되는 최고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역사상 칸국을 칭한 경우가 39개국 정도로 많았다. 대표적인 국가가 투르크계가 세운 위구르 칸국(回紇汗國・回鶻汗國. Uyghur Khaganate), 몽골계가 세운 금장한국(金帳汗國, Qipchaq ulisi(Jochi, Kipchak),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의 많은 나라들이 칸국이라 칭한다. 일본의 에도막부시대 말기 등장한 ‘정한론(征韓論)’에서 사이코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왜 조선을 한국(韓國)이라고 했는가?

 

대한제국은 건국 초기에 영어식 국명으로 ‘Empire of DaiHan’으로 하였다. 여기서 ‘KOREA’가 아닌 ‘Dai Han’으로 표기한 것은 대한제국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조선을 계승하는 국가이므로 외국인들이 ‘고려(Korea)'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해서, ‘Korean Empire’라고 하지 말고 ‘Empire of Dai Han’이라는 영문 호칭을 사용해주길 주한 외국 공사관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orea의 어원이 고려(Corea)'인데 1890년대 이후 Korea의 사용이 점차 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어식 표현인 KOREA를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Korea(프랑스어 Corée/러시아어 Корея)를 수용하여 ‘Korean Empire’ 또는 ‘Empire of Korea’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대한제국의 초기에 하급 관료와 황실 종친이 주축으로 결성된 독립협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줄기차게 주장해왔고, 고위 관료가 주축인 근왕파는 독일식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다. 결국 대한제국은 헌법격인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통해서 전제 군주국으로 태어난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승리한 후 11월 17일에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이후 고종황제는 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이준, 이상설, 이위종)를 보내게 되지만 일본에 의해 특사들이 회의장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이 사건에 분노한 일본은 이를 빌미로 고종황제(1897. 10. 12 ~ 1907. 7. 19)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황제(1907. 7. 19 ~ 1910. 8. 29)를 옹립했다. 이런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처리를 위하여 열린 파리강화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윌슨의 14개 조 평화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평화원칙에는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면서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 사이에 희망의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8년 만주와 노령에서의 ‘대한독립선언문(大韓獨立宣言文)’으로 독립의 의지가 불타오르게 된다. 1919년 1월 21일에는 고종황제(高宗皇帝)가 독살로 의심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독립의 의지는 일본 도쿄에서‘2.8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황제(皇帝)의 인산일(장례일)인 3월 1일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중심이 되어 ‘3.1 독립선언문’이 낭독하면서 전국에 걸쳐 독립을 위한 봉기가 거세게 일었다.

 

‘3.1 운동’은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신석우 선생은 “대한(大韓)으로 망했으니 대한(大韓)으로 흥하자.”고 하여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하고 주권이 황제(皇帝)에 있지 않고 국민(國民)에 있으므로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해방을 맞아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으로 상실된 국권은 ‘3.1 운동’을 통해 부활하였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명실공히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탄생하는 역사적인 분수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19년 3월 1일은 ‘대한민국 독립선언일’이다. 또한, ‘3.1 독립선언문’은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독립선언문’이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스스로 독립전쟁을 통하여 쟁취한 인류 민주주의 역사에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3.1 운동’은 ‘대한민국 독립전쟁’으로 다시 써야 한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대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한(韓)의 나라들을 잇는 종주국(宗主國)이며, 자주국(自主國)이며, 민주국(民主國)이다. 오늘날 ‘국민(백성)이 주인이 되는 크고 위대한 한(韓)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라의 이름은 그 나라의 존재 자체이다. 대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던 한제국(韓帝國)의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위대한 나라 대한국(大韓國)이 오늘에 이르러 다시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세상에 우뚝 솟구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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