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초인(超人)을 기다리는 망자(亡者)의 절규

이상호 | 입력 : 2019/04/03 [11:42]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 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3월은 희망의 달이자 아픔의 달입니다. 희망의 달인 것은 3월이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달이기 때문이고, 아픔의 달인 것은 일제로부터 자유의 희망을 안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열들이 일제의 총칼에 처참하게 유린당한 달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으면서 전개되는 일제의 만행과 독립운동에 대한 재조명으로 역사의 참된 거울을 만들기 위한 힘찬 노력은 나의 가슴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매년 3월이면 나는 이육사의 [광야廣野]를 읽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광야는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시일 것입니다. 이육사는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민족의 암울했던 시기에 절규하듯이 [광야廣野]를 외치다, 그들의 총칼에 목숨을 유린당했습니다.

    

광야[廣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것은 분명 초인(超人)을 기다리는 망자(亡者)의 절규입니다. 고려 시대 패관문학이 그렇듯이 암흑기에는 묵시문학이 발달하고 풍자나 은유를 통해 우회적으로 속내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광야廣野]는 거침없이 독립을 외치는 절규로 다가옵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의 어떤 시나 노래에서도 이렇게 야성적인 시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단군 이래 이 땅에 닭울음과 함께 여명이 밝아 천지가 개벽하고 삶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삶은 미래로 향해 영원하여야 할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신령한 이 땅을 부당하게 겁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고의 세월을 부지런히 갈고 닦았으니, 역사와 문명의 큰 물줄기가 길을 열었습니다. 비록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지만, 나는 신성한 이 땅을 위해 한매(寒梅-한겨울 매화, 역경을 이겨낸 고고한 선비를 상징)처럼, “내 가난한 삶을 불태워” 기필코 <백마 탄 초인>이 광복의 노래를 부리게 하는 밀알이 되리라. 그에게 백마 탄 초인은 광복을 이루고 민족의 자유와 번영을 개척할 현명한 후손이었을 것입니다.

    

이 시는 1945년 12월 17일 자유신문에 발표된 유고시로 이육사(1904.4.4-1944.1.16)가 1944년 1.16일 베이징(북경)의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기 얼마 전인 1943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광야는 1971년 유고 시문집 제4판본 『廣野』를 출판하면서 세상에 큰 빛을 보게 됩니다. 이육사의 시문집은 총 4차례 간행되는데, 그때마다 빠진 시문(詩文)이 첨가되었습니다. 문인 신석초 씨는 시문집 『廣野』(형설사 간행)의 서(序-서문)에서 『廣野』를 육사 시문집의 결정판이라 했습니다. 이육사의 모든 시는『廣野』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이육사의 독립운동과 생애, 시문(詩文)에 관한 논의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의 생애와 시문을 읽다 보면, 그는 시인이라기보다는 독립투사란 생각을 합니다. 그는 광야를 쓰기 전 자기 한 몸을 불사를 각오한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진정코 최후를 맞이할 세계가 머리의 한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오르는 순간 나는 얼마나 기쁘고 몸이 가벼우리까? 그러나 이 웃음의 표정은 여기에다 쓰지는 않겠나이다. 다만 나 혼자 옅은 미소를 하였다고 생각을 해 두십시오. 그러나 이럴 때는 벌써 나 자신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가만히 앉아서 그 타오르는 광경을 보는 폭군 네로인지도 모릅니다.”(계절의 오행, 1938년 12월 조선일보 게재) 

    

광야는 위의 “계절의 오행”이후 쓴 시이니까요. 이육사는 1941년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에 왔으나 항상 헌병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1943년 3월 북경에 갔다가 7월 백형의 소상(小祥) 때 잠시 왔으나 매우 쫓기는 걸음이었답니다. 그때 친족들에게는 조금만 더 참고 견디라는 말만 하고, 서울에 올라오자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었고, 1944년 1월 16일 새벽 5시 북경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지난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00년 전 3.1 운동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나 되는 202만 명이 만세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중 7500여 명의 조선인이 살해되고 1만 600여 명이 부상했으며, 체포 구금된 수는 무려 4만 600여 명에 달한다’면서 구체적인 피해자 수를 열거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아베 내각의 외무성 나가오 시게토시 동북아 1과장이 주일 대사관 참사관에게 전화로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3.1운동 관련 숫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항의하였으며, 고노다로(河野太郞)외무상은 강제징용 피해자를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며 “일본 기업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확실히 대응해 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일본은 무역 보복까지 운운하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처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아직도 그들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하였으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망언’과 맥을 같이 합니다. 어쩌면 아직도 군국주의적 근성을 못 버리지 대한민국을 깔보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칩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문명화한 나라입니다. 서구가 산업 문명을 통해 문명화되면서 일본을 문명화시켰습니다. 조선은 그때 개화와 척사의 대립으로 혼란을 거듭했지요. 개화론을 편 선각자들은 문명화만이 살길이라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외세에 의한 문명화는 조선반도를 그들의 밥상으로 만들었지요. 그런 점에서 근대의 문명화는 제국주의이며, 군국주의입니다. 문명의 야만성을 확연하게 드러낸 것이지요.

    

문명은 인류를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 지혜의 산물입니다. 문명 자체는 선과 악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문명을 어떤 마음으로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집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의 소망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문명은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문명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 폭력성과 결부되면 인간을 파멸하는 무서운 야만이 됩니다, 인간이 발명한 수많은 첨단무기는 문명의 총아이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 되어 인류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되었지요.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 군국주의는 문명의 힘으로 침략과 식민지 지배, 약탈, 시장 개척 등을 통해 약소국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 제2차 대전 후 대부분의 제국주의는 그 야만성을 반성하고 새로운 인간적인 문명의 얼굴을 하려고 애써 왔지만, 일본은 아직 그 야만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명의 눈으로 보면, 선진국은 확실히 후진국보다 문명화되었습니다. 선진국은 산업의 발달, 민주주의 발전과 정치 안정, 낮은 부패지수,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국론 통일, 강력한 군사력 등에서 후진국보다 월등합니다. 구한 말 우가 문명화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문명화하자마자 조선을 약탈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은 문명의 야만성을 먼저 배운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이 한국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문명과 역사 인식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일본이 하는 짓을 보면 우리를 깔보는 것 같습니다. 왜 갈볼까요? 우리의 국력과 문명의 수준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더욱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정쟁을 멈추고, 화합하여야 하며, 부패를 방지하고, 국민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며, 국방력 강화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육사가 절규하였던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부르는 광야’는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힘 있는 문명의 땅이 아닐까요? 3.1절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이육사의 광야를 읽으며 그가 바랐던 해방 조국은 문명의 힘이 강한 대한민국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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