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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인스 빌 GM 이야기’와 ‘이기인 르노삼성 부사장의 호소 편지’를 보며

이상호 | 입력 : 2019/05/20 [11:27]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 천안 아산 경실련 공동 대표] 아무리 분노가 차도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 빈대를 잡더라도 초가삼간은 태우지 말아야 한다. 이 속담은 모든 상황에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도 쪽박을 깨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전통사회에서 삶의 토대는 토지였고, 토지 생산물은 경제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잘 활용하는 자가 경제와 사회를 지배했다. 토지가 많고 비옥하며, 노동력이 잘 투입될 때 생산력은 증대되었다. 전통사회에서 토지 생산력의 증대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토지를 갖기 위한 싸움은 치열했다. 토지 수탈도 심했다. 토지 소유의 정도에 따라 고용 관계가 성립되기도 했다. 토지를 독점한 악덕 지주는 많은 사람의 삶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현명한 군주는 토지를 늘리기 위한 개간사업을 장려하였으며, 토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각종 연구와 사업을 전개했고, 토지 독점 방지 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산업의 중심은 토지에서 기업과 금융으로 이동되었다. 첨단 산업의 시대인 지금도 토지는 중요하지만, 기업과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고 있으며, 절대다수가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기업과 금융이 중심이 된 산업은 사람을 고용하여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경제를 유지․ 발전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유지․발전시킨다. 여기에는 생산, 유통, 소비라는 일련의 과정이 개입된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산업은 더 중요한 삶의 토대이다. 현대의 산업은 제조업, 금융, 유통,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지만, 그 중심은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모든 산업의 중심고리로서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생산 주체이다. 따라서 제조업이 위기는 전통사회에서 토지 생산력이 위기처럼 삶의 위기가 된다.

    

2008년 이후 미국에서 제조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한 사례가 있다. 위스콘신주에 있는 제인스빌은 GM 자동차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형적인 제조업 도시였다. 지역 경제와 고용, 금융과 상업 서비스 등이 모두 이 GM 공장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고조된 2008년 12월 23일 제인스 빌의 GM 자동차 조립라인이 멈췄다. ‘타호’가 마지막으로 조립되어 나오는 순간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GM 자동차는 1923년 쉐보레를 생산한 이후 85년간이나 이 도시에 풍요를 선물했지만, 수익성 악화 등으로 문을 닫았다. 노동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다가올 삶의 위기를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졌고, 제인스빌은 유령 도시처럼 변해 갔다.

    

과거 제인스 빌 GM은 시급 28달러의 고임금 일자리였다. 그러나 GM 자동차공장의 폐쇄는 연관 공장들의 연쇄 부도와 폐업을 초래하여, 제인스 빌과 인근 지역을 포함해 9000개의 일자리를 삼켰다. 주말이면 자녀들과 운동경기를 보고 외식을 즐기던 중산층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대출을 갚지 못한 노동자들은 집을 싼값으로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아 고통은 가중되었다. 삶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두 배로 늘었다. 우리나라 IMF 때 사람들이 삶을 비관하고 자살을 할 때, 일부 돈을 가진 사람들은 고금리의 자본을 이용해 즐기면서 ‘IMF 이대로’를 외쳤다는 풍문은 이곳에서도 통했다. 도시는 ‘가진 자’와 ‘잃은 자’로 나뉘어 서로 반목했고 인심은 사나워졌다.

    

마을 사람들과 행정기관들은 이 도시의 옛 영광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GM 공장 폐쇄 이후 다른 도시로 이동 배치를 수용한 노동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들을 ‘GM 집시’라 불렀다. ‘GM 집시’들은 스마트폰 낱말 게임을 하면서 아내와 소통하는 진풍경도 만들었다. ‘GM 집시’ 자녀들은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을 하지 않는다. 아빠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해 주말에 아빠가 오면 함께 보기 위해서였다. 어떤 이는 노모(老母)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제인스 빌에 남아 저임금의 허드렛일을 했다. 아내와 자녀들도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파커의 벽장]을 만들었다. 교사들은 벽장 속에 기증받은 치약, 청바지, 통조림 등을 쌓아두었다가 자존심이 강한 가난한 아이들을 몰래 벽장으로 데려가 그것을 주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매일 아이들의 표정과 페이스북까지 살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배려였다.

    

정부가 실업수당, 해직 급여, 재교육 학비 지원, 건강보험 지원, 노동자들의 전직 등의 공적 지원시스템을 시행했으나, 그들의 삶을 바꾸지 못했다. 심지어 재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취업한 사람들의 수입이 재교육을 받고 취업한 사람들보다 높았다. 이것은 자발적인 삶의 의지와 노력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공적 지원시스템은 일시적인 도움은 될지 몰라도 자발적인 삶의 의지와 노력을 일깨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위의 이야기는 에이미 골드스타인이 쓴 『제인스 빌 이야기』(이세영옮김, 세종서적)의 내용이다. 에이미 골드스타인은 워싱턴포스트 중견 기자로 퓰리처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은 에이미 골드스타인이 2008년 GM 자동차 공장 폐쇄 이후 7년간 인구 6만 명의 소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추적 연구한 결과물이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그 많던 치즈를 다 옮겼을까』에서 말하는 것처럼, 제인스 빌의 GM이 잘 나갈 때는 누구도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치즈는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삶은 비참해졌다. 제인스 빌의 GM 공장 고용 규모는 1971년 7100명으로 정점이 되었다. 앞날을 걱정한 이들도 있었으나, 경영진과 노동자들은 풍요로운 현실을 택했다. 그들은 오일달러가 베네수엘라를 지켜주리라 여겼던 것처럼, GM이 끝까지 안전하게 생산성을 유지하며 삶을 지켜줄 것이라 여겼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 제인스 빌은 과거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실업률은 금융위기 이전수준인 4% 아래로 내려갔지만, 대부분은 저임금 일자리이고 중산층의 삶을 보장했던 제조업 도시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산업 특히 제조업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것을 지키고 가꾸며 창조․발전시키는 일은 전통사회에서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토지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하여 농지를 살피고 비옥하게 만들며, 노동력을 투입하며 상황을 살펴야 한다. 농부가 장기간 농지를 돌보지 않고 파업을 하면 작물은 죽게 되어 농부의 소득은 사라진다. 우리나라에도 한때 산업화의 영광을 자랑하던 전자공업 도시 구미, 조선업으로 화려했던 거제, GM 자동차 공업으로 활기를 띠던 군산 등이 ‘제인스 빌’처럼 위기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엄중한 시기에 급작스럽게 용퇴를 결심하고 회사를 떠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이뤄왔던 소중한 터전이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르노그룹은 부산공장이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이 더 이어진다면 르노삼성의 존립에 치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될 것,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직원들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기인 르노 삼성 제조본부장이 지난 4월 12일, 부산공장을 떠나며 남긴 호소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존경하는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가족 여러분!”으로 시작된 이 편지에는 1993년 35세의 나이로 입사하여 60세의 초로의 문턱을 넘으며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심경과 그간 삼성 자동차를 일으키며 고생한 이야기, 특히 르노삼성자동차가 작지만 강한 회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당부가 확 와 닿는다. 그것은 르노삼성자동차는 국내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 소속된 자회사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인정하기 바란다는 점, 노사 간의 갈등이 회사 발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점,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조직을 더욱 공고히 하여 최고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부산공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 등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2018년부터 임단협 교섭에서 난항을 겪어 왔다. 이기인 부산공장제조본부장(부사장)은 그동안 임단협에 협상해 왔고 해결이 되지 않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4월 11일 부산공장을 방문하여 르노삼성 노조 간부와 사측 임원진을 만나 노․사간 양보를 당부했지만, 노조는 부분파업을 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2019년 임단협을 시작하는 지금까지 2018 임단협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2019년 5월 16일 잠정 합의하고 21일 조합원 투표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는 2018년 10월부터 총62 차례의 부분파업, 수없이 많은 실무교섭, 본교섭, 부산시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있었다. 르노삼성 자동차는 그간의 파업으로 7천 대의 생산 차질, 2천억 원 이상의 매출 손실, 부산지역 30개가 넘는 관련 기업의 부품 공급 부진 등으로 이어졌다. 부산지역에서 로노삼성자동차 부품 공급 관련 기업의 고용인원이 5,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하면, 사람들은 지난 1년 새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고 한 응답이 29%에서 59%로 껑충 뛰었다. 앞으로도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작년 25.4%에서 48.8%로 증가 되었다. 소득이 늘었다고 하는 사람은 20.9%에서 34%로 늘어난 반면, 소득이 줄었다고 한 사람은 26.2%에서 45.8%로 늘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더욱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하여 대통령의 경제 인식은 각종 언론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 경기는 둔화되고 기업은 틈만 나면 해외로 나가려 한다. 이미 많은 기업이 해외로 나갔고, 삼성전자와 엘지 전자도 베트남 등 해외 이전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한참 전 기업 총수를 국회에 불러 청문회를 할 때 한 국회의원이 해외 기업을 한국으로 가져오라고 호통을 쳤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특권으로 하는 호통이었다. 기업은 늘 이윤과 더 좋은 작업 환경을 위해 떠난다는 사실을 우린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와 일자리는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그것을 조장하고 지원하며 감독하여야 할 뿐이다. 미국의 ‘제인스 빌’의 사례에서 밝혀졌듯이 공적 부조는 일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공일자리 확대, 공적 부조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홍보하고 있다. 걱정이다

    

우리에게도 ‘제인스 빌’과 같은 사례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항상 치즈가 그 자리에 쌓여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노조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인스 빌’과 ‘르노삼성 자동차 이기인 부사장의 사직 편지’를 보면서 한국에서의 기업과 국민의 삶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본다. 쪽박이 깨지고 초가삼간이 불타버릴까 걱정이다.  

 

 

* 외부기고는 기고자 개인적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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