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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출산율 0.98, '와이어'에 살해되어가는 모성(母性)
기사입력  2019/06/07 [18:09] 최종편집    이상호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출산율 0.98이란 숫자가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희망이며 즐거움의 소리입니다. 아이의 웃음과 울음이 있는 가정, 아이가 뛰어노는 마을은 생기가 넘칩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울음과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우울해집니다. 출산의 축복이란 천부적인 모성본능이 살해되고 있습니다. 이런 암울하고 아픈 현실을 표현한 시가 있습니다. 김경주의 산문시 <와이어>입니다. 함께 감상해 봅니다.

    

<와이어>

    

나는 아기를 두 손에 들고 날아오르고 싶다 그는 흐느끼며 아기의 손을 놓고 떠 오른다 그녀를 안아보기 위해 공중에서 아기는 내려왔다 그들은 아기의 몸과 머리를 따로 묻었다 수십 명의 아기가 그녀의 물속에서 피어났다 찻잔 속에 연잎을 띄워주며 보세요 이건 수면으로 한 채의 절을 띄우는 겁니다 했던 건, 절보다 오래된 아기다 아기의 오래된 수면이다 나비 때가 누고 간 꽃 속의 붉은 똥, 아기야 아무도 모른다 몰래 무덤 속에 관을 하나 더 넣는다 해도. 소나기가 퍼붓는 날 아기를 달라고 나방이 내 방에서 울었다 아기가 나방들로 덮어 준 내 눈은 상복을 입은 벌레들을 보고 있다. 밤에 몰래 돌사자에게 석유를 부으면서 이런 걸 생각했다 레온, 나에게 종의 기원을 퍼 부어준 이 생과 더 이상 짝짓기를 하고 싶지 않구나 나는 꿈의 신체인 몸에게 시간의 휠체어를 태우기로 한다 나는 풀섶에 엎드려 두근거리며 몸에 검은 물이 다 쌓이길 기다린다 돌아가야 할 한 방울, 레온, 생이라는 이우국을 멈출 수 없구나. 아기가 솜사탕을 들고 놀이공원에서 어미를 찾는다 버려진 줄도 모르고, 아기는 갑자기 싱크대에 오줌을 누던 아비를 생각하며 비웃는다 두려움 때문에 오줌을 누면서 세상의 모든 LOCK을 비웃는다 회전목마들이 피를 흘리며 돌고 있다 백마에 올라탄 여자아이가 말에 더 채찍질을 하면서 자지털이 낀 이빨들을 툭툭 뱉어낸다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기의 신발 한짝은 언제나 섬뜩하다 그건 누군가의 전생 같아서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그냥 지나치는 짝이다. 애오개역 빌딩 옥상 난간에 서 있는데 한 아이가 나를 뒤로 안은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기는 나를 바닥에 놓아두고 낄낄거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김경주 <와이어>(시와 시학,2007,가을)

    

시(詩)는 시대와 삶의 아픔입니다. 우린 지금 과거 어느 시대에도 누리지 못했던 문명의 이기와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면서도 더 멋진 문명과 더 많은 자유를 갈망합니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은 욕망의 신(神)인 것 같습니다. 위의 시를 읽다 보면 시대의 비명이 들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요. 시가 어렵고 난해합니다. 특히 편한 언어, 문자보다는 단편 영상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이런 시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를 읽으면, 비명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힘이 솟습니다.

    

김경주(1976~  )의 시를 읽다 보면, 이상(李箱, 1910 ~ 1937, 본명 김해경)의 「날개」나 「오감도」 등이 연상됩니다. 시가 난해하고 산문적이며, 랩을 읊는 것 같습니다. 사실 김경주는 시와 랩을 잇는 ‘포에트리 슬램 운동’을 하는 극작가이기도 하지요. 그는 시와 랩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말합니다. 최근 발표된 시집 『일인詩위』에는 2010년 9월 7일 새벽 충남 논산의 한 철강업체에서 용광로에 빠져 죽은 청년의 문제, 미세먼지의 문제, 조류독감과 살처분의 문제, 취업난과 캥거루족의 문제 등과 같은 시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어둡고 칙칙한 세상을 통해 희망을 찾습니다. 그의 시는 반지하에서 빛의 세계를 그리워하듯, 어둡지만 건강합니다.

    

<와이어>에 감겨 아기들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이 시는 김경주의 시집 『기담』(문학과 지성사)에서 <미음, 미음을 먹어요>로 재탄생(Remake)됩니다. 사람들은 아기가 두려워 짝짓기도 불안해합니다. 원래 짝짓기는 종족 보존을 위해 신이 내려준 특별한 선물이며 유희입니다. 동물은 신의 명령대로 종족 보존을 위한 짝짓기만 하지만, 인간은 문명화되면서 짝짓기를 점점 종족 보존보다는 유희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인간만의 특권이자 재앙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짝짓기의 유희를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피임 도구와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미래와 가족공동체보다는 현재의 유희가 더욱 소중하지요. 그러면서 아기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나는 아기를 두 손에 안아 들고 날아오르고 싶다. 그는 흐느끼며 아기의 손을 놓고 떠오른다” 아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포기합니다. 장애물입니다. 인간은 아기가 태어날 기미도 없을 때 살해하고 맙니다. ‘그녀의 물속에서 피어날 생명’의 흐름인 순리를 막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울지도 웃지도 않고 아비와 어미를 비웃습니다. 아비는 겁쟁이고 어미는 비정합니다. 세상의 모든 잠금장치(LOCK)를 비웃습니다. 생명은 잠금장치(LOCK)에 갇혀 질식해 버립니다. 아기 탄생의 잠금장치(LOCK)는 널려 있습니다.

    

태초에 신이 준 가장 근원적이며 숭고한 것이 생명이듯이 아기는 위대한 희망입니다. 아기는 “절보다 오래된 아기”의 자비심으로 어른에게 오랜 생명의 율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욕망과 유희라는 양수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욕망과 유희의 노예가 되어 태어나지도 못하는 아기들보다 초라하며 비참합니다. 그런 어른을 아기는 실컷 비웃습니다. 어른들은 왜 몸과 머리를 따로 쓰면서 살아갈까요. 몸은 놔두고 머리만 재빠르게 굴리면서 계산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지 못하도록 생매장합니다. 소중한 생명을 버리는 행위가 불안하고 죄스러운 모양입니다. 사실 자유와 욕망과 유희를 위해 아이 갖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작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나기가 퍼붓는 날 아기를 달라고 내 방에서 우는 나방들로 덮어 준 내 눈은 상복을 입은 벌레들을 보면서’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성경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9:1-7)” 했습니다. 번성하고 충만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생육(낳고 기르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 생육을 포기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생육 없는 번성과 충만은 없었습니다. “나에게 종의 기원을 퍼 부어준 이 생과 더 이상 짝짓기를 하고 싶지 않구나 나는 꿈의 신체인 몸에게 시간의 휠체어를 태우기로 한다...... 생이라는 이 우국을 멈출 수 없구나.” 종의 기원은 신의 명령이자 천부적인 의무입니다. 그런데 ‘종의 기원을 준 이 생과 더 이상 짝짓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 불안합니다. 생은 우국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종족 보존의 본능을 짓밟았을까요.

    

인간은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욕망 충족과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도 흘렸습니다. 그래서 이젠 평화를 얻고 마음껏 즐깁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평화와 자유와 풍요의 유희 속에서 더는 종을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 종이 현재의 평화와 자유와 풍요를 짓밟을까 두렵습니다. 짝짓기는 더욱 원하지만, 생을 얻는 짝짓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의 아기 신발 한 짝의 섬뜩함, 누군가의 전생, 애오개역 빌딩 옥상에 서 있는 나를 안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팽개치고 비웃으며 날아오르는 아기’입니다. 마치 신화 같습니다. 문명의 달콤한 욕망과 유희만을 즐기는 인간에 대한 경고입니다. 아기가 「와이어」에 질식해 죽습니다. 모성이 살해되고 있습니다. 「와이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출산과 양육이란 모성을 살해하는 모든 요소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심각한 출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출산율 0.98, 올해 출생아가 32만 명으로 작년이 약 36만 명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출생아가 20만 명에도 못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러다간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출산율 0인 나라가 될지도 모릅니다. 유엔인구기금(UNFPA)에 의하면, 조사 대상 200여 개국 중에서 지난해 출산율 1.0명 이하인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라가 출산율 1.0 이하로 떨어집니다. 과거 출산율 1.0 이하인 나라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이었는데 지금은 1.2~1.3명으로 높아졌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나라 조이혼율(이혼에 관한 기본적인 지표, 1년간 발생한 총 이혼 건수를 당해연도의 총인구로 나눈 수치 즉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2.1로 상당히 높습니다. 이혼이 많다는 것은 출산과 양육의 문제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혼인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2018년 우리나라 혼인은 25만7622건으로 4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혼인을 포기하는 것은 독신의 가치관을 가졌다기보다는 삶의 조건이 혼인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며, 혼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청년 실업, 눈을 뜨면 치솟는 살인적인 집값, 지방 공동화 현상, 자녀 양육에 대한 엄청난 부담과 사교육비를 포함한 과도한 교육비, 결혼과 출산한 여자에 대한 직장의 배려문화 결핍 등 총체적인 문제가 혼인을 가로막습니다. 젊은이들은 혼인을 꿈꾸는 것 자체가 사치라 여길 수도 있으며 아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김경주의 시 <와이어>에서 < 와이어>가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출산을 가로막는 모든 요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 ‘와이어’는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입니다. 인구론자 맬서스(1766~1864)는 인간에겐 종족 보존의 본능과 생존 본능이 충돌할 때 종족 보존의 본능을 우선한다고 합니다. 모든 종은 활동공간의 밀도가 높고 생존이 어려울 때 재생산보다 생존 에너지를 총동원한다는 것이지요. 성경에도 기근이 심할 때 아이까지 삶아 먹는 끔찍한 사례가 나옵니다. 출산율 세계 최저는 우리나라가 그만큼 생존환경이 나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둘째 ‘와이어’는 체제 불안입니다. 점차 늘어나는 알코올 중독문제, 마약의 증가, 주택문제, 소비문제, 각종 범죄 등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안전망이 불안합니다. 러시아의 경우 체제 불안은 1990년대 1억 500만 명의 인구가 200년에 와서 3300만 명이 줄게 했지요. 지금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남북대치 등 총체적으로 불안합니다.

    

셋째 ‘와이어’는 남과 비교하는 비교 우위적인 사회의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자녀를 3명만 낳아도 미개인 취급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자녀 출산에도 남을 의식한 것이지요.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경쟁의식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 속에서 살지요. 그러니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이즈만은 『고독한 군중』에서 전통지향적 인간형, 타인 지향적 인간형, 미래지향적인 자주적 인간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것을 보면, 아직 타인 지향적인 근대성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경쟁이 미래지향적인 자주적 인간형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 것이라 여깁니다. 리이즈만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거의 자주적 인간형의 사회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생존 투쟁만 강하게 남지요.

    

넷째 ‘와이어’는 여성들의 ‘부모 세대에 대한 반란’으로 보입니다. 사실 우리 엄마들은 오로지 가족과 자녀를 위해 평생 허덕이며 희생하셨습니다. 마음 놓고 다리를 펴지 못했으며, 놀이도 못 갔습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분들이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결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택합니다. 나무랄 수 없지만, 안타까운 것은 자신을 택하는 중심에 공동체적 사고가 깃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지요.

    

다섯째, ‘와이어’는 배려문화의 부족입니다. 우리나라의 직장은 출산한 여자, 임신한 여자를 반기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결혼과 출산은 경력 단절, 승진 포기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출산은 자기 성장의 무덤이라고 여기는 여성들도 많지요. 실제로 출산이 여성의 자기 성장의 무덤인 경우가 많지요. 또한, 아파트 층간 소음의 문제 등은 아기에겐 위험하지요.

    

여섯째 ‘와이어’는 여성 스스로 가진 모성 포기와 자기 생존 우선 의식입니다. 이제 여성에게 생명과 바꾸는 위대한 모성은 기대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나 출산은 고통만 아니라 축복이며 희망입니다. 출산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는 풍조도 문제입니다. 모든 기쁨의 꽃은 고통이 없는 곳에 피지 않습니다. 자유와 능력 발휘라는 사회적인 성취와 유희의 욕구도 출산을 기피하게 합니다. 출산은 그것을 희생시키니까요. 그러나 세상에 손해 없는 장사가 없듯이 포기 없이 모두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자유에도 피의 냄새가 난다’는 김수영의 싯귀처럼 모든 자유와 유희에도 고통이 수반됩니다. 출산의 고통은 또 다른 선택이며 희망이지만, 문명의식은 그것을 포기하게 하고 있습니다.

    

문명은 자유와 평등, 평화를 만끽하게 했지만 동시에 위험과 문제들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출산율 최저, 모성의 살해에는 남성, 여성, 정부, 사회 모두가 공범입니다. 그 공범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총체적으로 문제해결과 의식의 변화를 이룰 때 출산율도 높아지고 미래도 희망이 깃듭니다. 아기 울음소리는 미래이고 희망입니다. 아기가 마음 놓고 울고 웃으며 뛰놀 수 없는 곳은 암울한 지옥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미국 포클랜드 메인 메디컷 센터에 분만실 간호사들 9명이 모두 임신하여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며 출산하는 아름다운 배려의 문화는 언제 만들어질까요. 모성을 살해하는 <와이어>가 사라질 날은 언제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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