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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심인》 돌아오라, 가족 품으로

이상호 | 입력 : 2021/06/10 [09:42]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 경실련 대표] 뜨거운 6월이다. 기온이 30도까지 오른다. 6월이 뜨겁다는 것은 태양의 열기보다 우리 현대사에서 총성과 포화가 전 국토를 뒤흔들었던 비극 때문이다. 그 총성과 포화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전쟁에 빼앗기고, 피난 대열에서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와 딸을 잃은 슬픔이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뜨겁게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그것을 잊어가고 있다. 

 

우리 현대 역사에서 3월부터 6월로 이어지는 봄은 뜨거운 달들이다. 3월은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민중들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뜨거운 불꽃을 지피기 시작했고 그 열망은 4월의 혁명으로 이어졌다. 전 국민이 거리를 메웠고 자유와 정의를 외치는 불꽃은 뜨거웠다. 시위대에 총칼로 대응했던 당시 정권의 야만도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정은 이기지 못했다. 그때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청춘이 많았다. 

 

4월은 세월호에 꿈을 실었던 꽃다운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되어 돌아오지 못한 달이기도 하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와 가족들의 타는 가슴은 6월의 태양보다 뜨거울 것이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7년 전의 멈춤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5월은 꽃피는 산과 들로 나들이 가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의 5월은 뜨거웠다. 5.18 광주항쟁, 그 피의 역사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6.25 전쟁으로 뜨거웠던 6월은 또 6월 항쟁으로 뜨거웠던 달이기도 하다.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은 장기집권을 꾀하며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탄압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거리 시위가 격해지자 그해 4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장기집권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전국적인 시위에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 이양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선언을 발표했다. 비로소 이 땅에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뜨거운 역사 현장에서 아들과 딸, 아버지와 어머니 등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헤어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는 지금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있다. 삶이 궁핍하여, 인생에 실패하여, 실직하여,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갖은 사고로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또 각종 범죄에 의해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얼마나 많은가? 아직도 미궁에 빠진 ‘개구리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린 지금 가족을 잃은 사람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민주와 복지를 외치는 정치인과 정부라면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을 읽는다. 황지우의 《심인》이다. 

 

심인

-황지우(1952〜 )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 지성사 1983-

 

시는 오히려 담담하다. 화자는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연을 남의 일 보듯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지금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것 같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은 겨울밤 화로처럼 타들어 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신문 광고란을 대충 보며 혀를 찰 정도인 것 같다. 아니 아예 그 광고란을 보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정부와 수사기관을 포함한 행정기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사자들의 애타는 마음엔 무관심하다. 

 

그런데 시가 이상하다. 서정시의 문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찾는 사람의 이름은 고딕으로 썼다. 시에는 시인의 직접적인 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것도 시일까? 시 형식이 파격적이다. 그냥 신문에 나온 광고를 옮겨 놓고 화자는 똥을 누며 그 신문 광고란을 보고 있다. 남의 절박한 일을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더 크다. 시의 면면을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상황과 사연이 풍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의 화자가 똥을 누면서 광고란을 읽듯이 담담할 뿐이다. 

 

시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시대 상황과 처한 서정을 표현하며 때로는 시대를 고발하고 시대를 초월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를 위해 나름의 형식을 찾는다. 특히 황지우의 시가 그런 것 같다. 시의 제목을 보자. 《심인》이다. 심인을 한자로 쓰면 찾을 심(尋) 사람인(人)이다.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다. 누구를 찾는가? 가족을 찾고 있다. 지금도 집을 나갔거나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는 사람을 찾는 사람이 많지만 1980년대도 절박했던 것 같다. 아니 그것은 그 이전에도 절박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찾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이 시는 1980년대 발표된 시이다. 따라서 그 시대 상황을 유추하면서 감상해야 한다. 사람을 찾는 일은 요즈음은 인터넷과 방송 매체 등이 발달해서 신문에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때는 신문에 상당히 많이 나왔다. 그때 신문 하단에는 사람을 찾는 한 줄 광고가 빼곡했다. 신문에는 실종자의 이름, 간단한 신상명세, 그리고 돌아오라는 말과 사연이 한 줄 정도 있고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가끔 얼굴도 실렸었는데 모두 우울했던 것 같다.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집을 나간 사연이 있다. 이 시에는 찾는 세 사람을 통해 각자 집을 나간 사연, 실종된 사연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있다. 제1연의 김종수의 사연을 보면, 시기적으로 80년 5월 가출이다. 혹시 광주 항쟁에 연류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군부에 연행된 것일까? 혼란한 세상을 피해 어리론가 숨어버린 것일까? 김종수가 실종된 사연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누나이다. 이를 보면 김종수는 누나와 같이 살았다. 부모님은 안 계실 수 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사연은 모르겠으나 누나가 군대 소집 영장이 나왔으니 돌아오라는 사연을 담은 것을 보면 살기가 넉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제2연에서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로 보아 광필이를 기다리는 당사자는 광필이의 형인 듯하다. 광필이는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보아 큰 잘못을 저지르고 형에게 혼이 난 후 집을 나간 모양이다. 시에는 형제간의 갈등이 배어있다. 그런데 형이 광필이를 찾는 이유는 어머니가 위독하기 때문이다. 광필이 어머니는 광필이가 집을 나가고 화병을 앓았는지, 연로하여 병을 앓았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의 맥락으로 보아 어머니는 형제간의 갈등과 광필이의 가출로 화병을 얻은 것 같다.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두 아들을 키워 온 모양이다. 역시 서민의 느낌이 풍긴다. 광필이와 형을 이어주는 것은 어머니이다.

  

제3연에서 조순혜는 아버지와 싸우고 가출한 것 같다.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오라”라는 것으로 보아 조순혜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아버지이다. 조순혜는 아버지와 둘이 살던지 가족과 살더라도 아버지와의 사연이 깊은 것 같다. 아버지가 잘못한 모양이다. “내가 잘못했다.”라는 표현에는 사과와 용서가 담겨 있다.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 말에 이미 배어있다. 

 

시에서 찾는 세 사람의 가출과 실종의 사연은 국가와 사회적 격동으로 인한 사연과 가족과의 갈등으로 인한 가출로 구분된다. 그런데 가출과 실종의 사연은 그 외에도 무수히 많다. 시에는 다만 세 사람의 가출을 통해 실종자의 다양한 사연을 암묵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제1연에서 제3연으로 이어지는 사람을 찾는 주체에 따라 깊이와 결이 다르다. 제1연에서 김종수를 찾는 누나는 김종수를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입대 영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면에는 그저 누나가 기다린다고 하면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 입대 영장이 나왔을 때 입대하지 않으면 군 기피자가 되어 전과자가 된다. 그래서 입대 영장이 나오면 반드시 입대해야 한다. 그때는 입대하는 사람은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라는 가족과 친지들의 환송을 받는다. 그러나 김종수는 누나의 환송 외에는 받지 못할 것 같다. 누나가 김종수를 찾는 마음의 애절함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누나의 생활도 궁핍한 것 같다. 

 

제2연에서 광필이를 찾는 형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아직도 형의 마음은 다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지난 일을 따져 묻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형의 마음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말에는 어머니가 광필이를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이 담겨 있다. 

 

제3연에서 조순혜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그러기에 딸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한다. 집 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이 누나나 형의 마음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비하면 결과 깊이가 얕다. 시에는 가족관계에 따라 애착 정도가 다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누구의 마음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만 하겠는가? 

 

어쨌든 제1연에서 제3연까지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제4연에서 신문을 통해 이를 읽는 화자의 마음은 담담하다. 그러기에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지금은 거의 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변을 보기에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지만, 그때는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통시)에서 볼일을 봤다. 볼일을 볼 때 신문지를 들고 들어가는 이유는 볼일을 보면서 읽다가 볼일을 다 보고 난 후에 꼬기꼬기하여 뒤를 닦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니 똥을 누면서 보는 신문은 똥 누는데 심심함을 해소하고 뒤처리를 위한 수단이다. 거기서 읽는 《심인》란은 볼일을 보는 화자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다. 

 

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지금도 실종자는 넘쳐난다. 다만 사회적으로 일반대중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실종자들은 사고로 인한 것도 많지만 개인적인 파산, 실직과 비관, 이혼과 가족관계의 파괴, 질병 등 척박한 세상에서 삶의 벼랑 끝까지 몰려 사라진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문명사회에서 노숙자가 늘어나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95%를 넘는 시대에 찾을 길 없는 가족이 많다. 지난 10년간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실종 선고자가 무려 6,000여 명이 넘는다. 실종자들의 유형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대학교수였던 적이 있고 어떤 이는 대기업의 임원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을 떠나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도 고시텔에서 삶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그들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실종자들은 남겨진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어머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살아 있을까? 내가 잘못한 걸까? 어디서 몸 성히 밥은 먹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어머니에게 그런 마음이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한탄과 함께 불쑥불쑥 솟구칠 것이다. 사라진 가족은 남은 가족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차라리 죽었다면 슬픔은 크지만, 그 슬픔은 시간이 흐르면 묻히게 된다. 그러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세월호 사고처럼 바다에 수장되어 시신조차 찾지 못하였을 때, 온갖 의문과 상상을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도 그 상상과 추측은 꼬리를 물고 유언비어를 탄생시킨다. 얼마 전 한강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실종되었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의 사인을 두고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실종자는 증언할 수 없기에 남은 자들의 상상이 세상을 뒤덮는다. 그 가운데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세월호 사건에서 시신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영원한 실종자들이다. 6.25 전쟁으로 죽은 자들이 얼마나 많으며 실종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개구리 소년’의 사건은 오리무중이다. 지금도 실종 아동이 넘쳐난다. 충청지역만 하더라도 지난해(2020년) 하루 3.7명꼴의 아동이 실종 신고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2020년) 한 해 대전 503명, 세종 130명, 충남 731명의 아동이 실종 신고가 되었다.(중도일보 2021. 5. 25) 정부는 2007년부터 실종 아동의 날 행사를 진행해 왔고 2020년부터는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에 따라 실종 아동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하고 실종 아동 주간을 운영해 오면서 다각적인 캠페인을 벌여오고 있으나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지금도 남북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때 부모 형제를 만나 울부짖던 모습이 생생하다. 설운도의 노래 <잃어버린 30년>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가족을 찾는 애절함을 전해준다. 영화 <국제 시장>을 눈물 흘리지 않고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 애절하고 절박한 가족애 때문이리라. 세월호 사고가 난 후 충혈된 눈으로 바다를 보며 밤을 새우던 부모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가 뭐래도 실종된 가족, 집 나간 자식, 전쟁터에 나간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만 하겠는가? 하근찬의 단편소설 『수난 이대』(하근찬, 이상숙 엮음,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7) 에는 그런 부모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진수가 돌아왔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덕거리고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러나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정거장에서 연기가 물씬물씬 피어오르며 기적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때가 가까워야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해가 이제 겨우 산등성이 위로 한뼘 가량 떠 올랐으니 오정이 되려면 아직 차례가 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까짓것, 잠시 쉬면 머할꺼고, 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찍 누르면서 팽! 마른 코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휘청휘청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심인》, 6월에 이 시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할머니 생각 때문에 더하다. 할머니는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에도 눈을 감지 못하셨다. 할머니의 6월은 뜬 눈의 낮과 밤이었다. 막내아들이 6.25 전쟁에 참전하여 북진하다가 전사했다. 하지만 시신을 찾지 못하여 행방불명 처리되었다. 할머니는 혹시나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나 않을까 평생을 기다렸다. 나의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간절한 기다림의 불꽃이었다. 돌아가신 후에도 눈을 뜨고 계신 할머니의 눈을 손으로 쓸어 감겨주시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 이제 눈을 감으시고 저승에서 꼭 희우 만나세요” 난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첨단 과학의 시대에 실종자들을 조기에 찾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의 구축은 어려울까? 정부나 정치인들은 실종자 찾는 일과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을까? 시에서처럼 신문 광고란을 보듯 하지는 않을까? 실종 아동을 찾는 일에 일반 대중이 적극 동참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특히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시대에 실종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을까? 그게 돈만으로 될까? 지금도 실종자들의 가족은 외치고 있다. “돌아오라, 가족 품으로” “돌아오라 엄마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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