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자식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할 때 진짜 어른이 된다.

이상호 | 입력 : 2020/05/08 [10:42]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어버이날이 다가오면서 카네이션 바구니와 효도 관련 잠언들이 카톡으로 날아온다. 어떤 후배는 어머니를 매주 찾아가다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릴 때 한 달 동안 어머니를 찾아가지 못한 아쉬움을 보내오기도 했다. 나는 그 후배를 늘 효자라고 칭찬한다.

 

지난 설에 어머니 산소에 갔을 때 봉분 잔디가 상해 있었던 것이 마음이 걸렸다. 그래서 해동하면서 어머니 산소를 다시 찾았다. 찬란한 봄기운에 잔디도 생기를 얻고 있었지만, 그리 흡족하지 않았다. 마음이 허전했다. 봄이 오면서 밭에 가서 아내가 봄 냉이를 한 바구니 캐와서 된장국을 끓였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생전의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할 때까지 봄이 되면 냉이를 캐서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그 기억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있다가 샘물처럼 솟아난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 생각

 

-이숙(자영)(1957~ )-

  

새치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하얗게 되고 날았다 

처음 염색하던 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마흔둘 

여덟 번째 딸 태어났을 때 

어머니 머리카락 이미 백발 

어린 딸 부끄러울까 늘 염색을 했다 

철들어 어머니 머리카락 

염색해 드릴 때 귀찮아 짜증도 부리고 

늦었지만 미안합니다 

 

내 머리카락 염색하던 날 

염색하고 돌아앉아 

어린 딸 젖 물리던 

울 엄마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다시 만나는 날 

쪽 찐 머리 곱게 빗어 드릴게요 

 

-이숙『사랑의 힘』(문학신문 출판국, 2019)-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 년이 넘도록 허전함에 못 이겨 사진을 보고 울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아내와 딸이 어머니 사진을 감춰버렸다. 지금도 그 사진을 주지 않는다. 어디 두었느냐고 물으면 잘 보관하고 있다고만 한다. 어디 감추어 두었는지 애써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세월이 더 흐르면 내 앞에 내놓을 것이라 믿는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늘 희생적이고, 자식은 어머니에게 늘 미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온갖 것이 후회로 남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을 더욱 깨닫는다. 시인은 하얗게 된 머리에 ‘처음 염색하던 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감성이 살아있는 딸들이라면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가 마흔두 살 때 여덟 번째 딸로 태어난 모양이다. 늦둥이이다. 옛날엔 아이도 참 많이 낳았다. 하기야 의료시설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고 생명에 대하여 하늘의 명령이라고 믿었던 문명에 오염되지 않았던 순박한 시절의 여인에게 뱃속에 잉태된 아이는 하늘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낳은 자식을 자기의 분신으로 여기며 온 마음으로 키웠을 것이다. 그 가난한 시절에 어머니는 굶을지언정 자식은 굶기지 않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혹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나를 낳고 한겨울 방안이 너무 추워 나를 배 위에다 올려놓고 겨울밤을 지냈다고 한다. 자신은 추위에 떨면서 체온으로 아들에게 온기를 주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나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것은 적어도 70년대까지 가난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고난의 역사에서 배를 조르면서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다가 그렇게 가신 어머니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 먹을 것이 풍족한 지금 우린 그런 어머니의 역사를 잊고 살아간다.

 

마흔두 살에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이미 백발의 어머니로 변해 갔음이 분명하다. 어머니는 흰 머리를 염색으로 숨겼다. 내가 곱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딸이 친구들에게 부끄러울까 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딸은 그 숭고한 마음을 몰랐다. 딸이 좀 더 성장하자 어머니는 딸에게 염색을 부탁했다. 딸은 어머니 머리를 염색하면서 잔소리를 해대고 짜증도 부렸다. 나를 포함한 모든 자식의 모습이다. 

 

시간이 흘러 딸이 어머니 나이가 되었다. 딸의 머리에도 진한 서리가 내려 염색을 했다. 이제는 딸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라 미장원에서 했겠지만 어린 딸 젖 물리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지난 시절 어머니에게 한 짓이 기가 막혔다. 눈물이 났다. 후회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다시 만나는 날, 쪽 찐 머리 곱게 빗어 드릴게요’ 딸은 저승에 계신 어머니에게 약속한다. 딸도 언젠가는 어머니 곁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미안한 마음을 갚기로 했다.

 

주자(朱子)의 십후회(十後悔)가 떠오른다. 사람이 후회하는 열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이다. 부모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거의 다 만족스러운 효도를 하지 못하고 후회를 한다. 

 

자식은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안다고 했다. 특히 여자가 그렇단다. 자기가 자식을 낳고 길러야 그 노고와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음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때는 이미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철이 제대로 든다는 것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도 아직 어머니 앞에서는 어린아이였을 것이며 불효의 한을 가슴에 새기는 지금이 비로소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 

 

나이 들면서 그리워하는 어머니는 추억을 솟구치게 하고, 가슴 가득 그리움을 용솟음치게 하는 눈물의 화신이다. 어머니가 그립다.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사람이 된다. 소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 1900〜1944)는 “우리 부모들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 문명화된 지금, 많은 자식이 부모들을 돌보지 않는다. 양로원, 요양원에 가면 부모를 맡겨 놓고 한 달에 한 번도 오지 않는 자식들이 많다고 한다. 문명이 가져다 준 야만이다. 그러나 그들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후회하리라. 늦기 전에 효도하자. 어머니 생각이 간절할 때 진짜 어른이 된다. 어버이날을 맞으면서 시 《어머니 생각》을 다시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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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현 2020/05/08 [13:39] 수정 | 삭제
  • 글을 읽으면서, 혹시 나는 어버이날 하루의 일회성 효도만 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상품과 돈이 수단이 될 순 있지만, 사랑을 대변할 순 없다는 것을 자꾸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한낱 의례적인 행사로 전도되지 않게 효도의 참 의미를 되새기겠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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