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 피해자 증언 연재 ➁아무 죄 없는 주부가 여자삼청교육대로 끌려가다

뉴스파고 | 입력 : 2014/12/07 [20:16]
                                                                   삼청교육대 인권운동연합 회장 전0순
  
1980년, 저는 나이 42세로 경북 포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해 8.21 경주검찰청에서 출석요구가 와서 영문도 모르고 갔더니 저를 포함하여 여자 3명을 닭장차에 싣고 포항경찰에 와서 유치장에 가두었습니다. 나는 전과도 없는 주부일 뿐 왜 유치장에 가두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하룻밤을 지새운 후 아무 조사도 하지 않고 나를 포함한 여자 6명을 닭장차에 싣고 대구경찰서에 가서 또 3명을 더하여 도합 9명을 싣고는 어디론가 산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나는 불안하고 억울하여 계속 울고 갔습니다. 가다가 해질 무렵에 어딘지 유치장에서 또 하룻밤을 지새운 후,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닭장차에 싣고 또 산속으로 계속 달려가다가 오후 3시 경 하늘만 보이는 깊은 산 속 군 부대에 내려주었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공수부대 군인이 나오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호루라기를 휙 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빨리 옷갈아 입고 연병장에 내려가!”하며 불호령을 내렸는데, “이 년은 뭐하는거야!” 하며 내가 꾸물거린다면서 엉덩이를 한 대 맞고 나니 울고 오던 슬픔은 금방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어 눈물도 안나오고 뭔가 불안하고 겁이 왈칵 났습니다.

옷을 갈아 입고 연병장에 내려가자 수백, 수천 명 될 것 같은 많은 여자들이 군복을 입고 줄을 서서 있었습니다. 내가 받은 여자삼청교육대는 50대, 60대 부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나이 어린 딸 같은 교관들로부터 구둣발로 걷어 채이고 짓밟히고 몽둥이질을 당하여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 것을 수 없이 목격했고, 또 죽지 못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짐승 같은 취급을 받아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날 부터 14일간 포복, 구보, 물구나무서기, 낙하산 훈련 등 삼엄한 공포 분위기 속에 이름 모를 훈련을 당하는데, 우리 모두는 거의가 주부들이기에 훈련들을 잘 할 수 없으므로 몽둥이 세례라고 하는 말이 옳은 설명이었습니다.

여자삼청교육대!
저는 남편이 6.25 참전 육군장교로서 부상을 당해 그로 인한 후유 장애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 보낸 보훈 가족이며, 전쟁미망인으로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아왔습니다 .

어린자식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활에 보탬이 될까하고 친지들의 권유에 계를 하였는데, 계원중에 현직 형사가족이 있었는데, 무슨 베짱인지 4구좌를 가입하여 앞번호에 전부 낙찰받아 타간 후 월부금을 불입치 않고 수 개월을 미루므로 대납하기가 너무나 힘이 들어 차용증으로 봉급을 압류하였더니, 앙심을 품고 월부금을 지불치 않으려고 저를 삼청교육대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연약한 여자에게 쥐꼬리 만한 권력을 악용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육 중 혹독한 훈련과 매를 많이 맞고 2주 후에는 전두환 장군의 대통령 취임식이라며 1980년 9월 4일 수료식을 마치고 또 닭장차에 짐짝처럼 실려서 대구경찰서에 내려주므로, 일행 3명과 밤에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당도하니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몸무게는 15-16KG 줄었고, 머리 윗부분이 곪고, 진물이 많이 났고, 온통 몸을 가누지 못하여 수 개월을 누워 지냈습니다. 현재는 양쪽 귀가 난청 장애자가 되어 장애 3급입니다.

여자삼청교육대!! 그것은 현대판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으며, 영원히 삼청교육대라는 인권유린의 현장을 잊을 수 없고, 이를 계획하고 교사한 자는 반드시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1980-1987년까지는 이사할 때 마다 동사무소에서 “당신은 순화교육자지요?” 하고 문의 하므로 나는 깜짝 놀랐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 5공 당시 삼청교육자임을 밝히는 것은 모욕적인 부끄러움이었던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그 후 어떻게 삼청교육수료 사실을 동사무소에서 아는지 궁금하여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 보니 상단에 “순화교육자”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므로 더욱 깜짝 놀랐고, “나는 간첩도 죄인도 아니며 전과도 없을 뿐더러, 남편이 국가 유공자인데 왜 이런 표기를 합니까? 언제 없어집니까?"하고 항의하니 곧 지워주겠다고 하며 복사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삼청교육대 인권유린의 피해자가 된 것도 억울한데 전두환 정권 8년이란 세월 동안 피해자들을 초본 상단에 표기해 놓고 생활에 불편을 주고 범법자로 매도하여 모욕을 주며 제2의 인권유린을 당한 철천지한이 맺힌 이 억울함을 반드시 역사에 기록되어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무고한 국민들을 죄인으로 매도하여 때려 죽이고 총 쏴 죽이고 병신 만드는 독재자는 없어햐 할 것이고 이를 위하여는 반드시 5공 최대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우리나라가 인권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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