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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피해자 증언 ㉕ "왜 착한 남의 남편 끌고 가서 병신 만들어 죽이나?"

뉴스파고 | 입력 : 2015/02/05 [08:07]

                                                                    삼인련(운영위원), 인천시 박0화

저의 남편은 인천 철도공작창에 다니다가 동아건설에서 해외근무 사원을 모집한다기에 전직장에 사표를 내고 건설회사에 시험 합격하였으나, 건강에 혈압이 높다고 하여 그만 탈락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남편은 그림에 소질이 있으므로 직장이 구해질 동안에 쉬지 않고 간판도 써주고, 초상화도 그려주고 하여 생활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1980년 초에 남편이 일 때문에 작업장에서 자고 들어오지 않았는데 새벽 4시에 군인 2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담을 넘어와서 ‘김정웅 어디갔느냐?’ 고 다그쳤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날이 밝아 남편이 와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있는데 이웃에 있는 방범대원이 와서 남편을 송현파출소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왜 파출소에 가느냐고 하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하여 갔는데 곧바로 동부경찰서로 이동하였고, 거기 온 사람 한사람씩 불러서 군인들이 가슴 등을 마구 구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남편이 오지 않아 동부경찰서에 면회를 갔으나 면회 사절이었고, 이튿 날 또 갔으나 면회사절이었습니다. 거기 끌려온 사람들이 모두 부천 33사단으로 간다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조금 있다가 닭장차에다가 사람들을 싣고 옆에 무장군인들이 앉아서 옆도 못보게 하는 듯 부동자세로 앞만보고 앉아 차옆에 있는 가족들을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닭장차 버스를 따라 주위에 있던 가족들이 모여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기도 면회사절이었습니다. 그 이튿날 갔으나 또 면회는 사절이었습니다.

 

부근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아련히 보이는 사람들을 보니, 머리를 빡빡 깎고 상하의를 벗은 채 팬티만 입고 훈련받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빨리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는데, 4~5주가 지난 뒤에 남편이 와서 죽은 사람 살아온 듯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니 병색이 완연하고 머리, 얼굴, 목 하나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부천 33사단에서 또 전방부대로 가서 혹독한  각혈도 많이 하고, 부대에서 동네친구동생도 만났으나(그 부대 군인) 눈짓만 하더랍니다. 남편은 죽을 데를 왔구나 죽어가겠구나 하고 생각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매를 많이 맞으니 견딜 수 없어서 동료 한 사람은 자살하려고 못을 삼키는 사람도 있었고, 남편은 너무 각혈을 많이 하여 다른 방으로 쫓아 보내더랍니다. 밤중에는 정신 분열증이 생겨서, 옷보따리를 들고 내가 왜 여기 왔나? 집에 가야지, 하니까 "야, 이 새끼야 이리 나와"하면서 독방으로 불러내어 반 죽을 만큼 때리더랍니다.

 

저는 노동 일로 3남매의 끼니를 이으며 살고 있으니, 골병 든 남편 치료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시름시름 앓으며, 각혈이 심할 때는 한 요강이 될 때고 있었습니다.

 

인천도립병원 응급실에 가서 겨우 응급치료를 받고 돈이 없어서 집에와 보건소에 다녔으나 별 차도가 없고, 밤만 되면 고함을 치며 가족들을 못 견디게 하고 다리가 마비되어 밤새도록 주물러야 되고, 너무 아프니까 술 먹으면 아픈 것이 좀 잊어질까 하였으나, 술 먹으면 가족들을 바깥에 나가라고 내쫓고, 7살 짜리 아들을 삼청교육 시킨다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박아 팔을 등뒤로 올려놓고 훈련을 시키면서 야, 이새끼야, 이것도 못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자갈밭에 머리 박고 10분만 서라, 하면서 지긋지긋한 삼청교육을 가르치고 했습니다. 남편은 술이 깨면 내가 왜 그랬나 하며 울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정신분열증과 결핵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왜 국가가 남의 남편을 끌고 가서 병신 만들어 죽게 한단 말입니까?

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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